제빵왕 김탁구. 수-목요일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와 함께 요근래 가장 인기있다는 그 드라마를 어제 처음으로 시청했다. 24시간 내내 병원에서 혹사당하느라 드라마 따위를 볼 수 있는 여유는 없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병실에 켜져있는 TV 화면을 통해서 요즘 어떤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지 정도는 대충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김탁구가 대세라고들 했다. 생각해보면 수요일과 목요일 저녁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전 병실에는 제빵왕 김탁구가 상영되고 있었으며 보호자나 간병인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드라마 평가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도 재미있게들 보길래 멀찌감치 서서 10분정도 그 드라마를 보았는데, 때마침 극중 김탁구의 친아버지(구일중, 전광렬 역)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장면이 TV를 통해 전파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신경외과 전공의 아니랄까봐 그 장면을 보면서조차 환자의 manage를 어떻게 해나갈지 생각의 틀을 엮고 있었다.

 외상 등이 없었던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충격으로 인해 혈압이 상승하여 발생한 뇌내출혈(Hypertensive ICH)일 가능성이 높다. 우측 편마비를 동반한 의식변화는(stupor, 혼미) 좌측 뇌 기저부에 상당량의 뇌출혈이 발생하였음을 짐작케하는 단서다. 신경학적 변화가 이 정도까지 진행되었다면 90% 이상은 수술 적응증이 되는 뇌내 출혈이었을테지만, 이후 극중에서 벌어지는 여러 정황을 미루어볼 때 구중일 회장에게는 보존적 치료만(비수술적)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측 편마비를 동반한 의식저하를 비수술적인 방법으로 care 하는 것은 약간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더군다나 그 비수술적인 방법이 단지 normal saline 1L를 달아 놓는 것 외에는 뇌압하강이나 혈압 하강 등 환자를 위한 그 어떠한 치료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후 구일중 회장은 혼미 상태인 채로 안방 침대에 곱게 누워만 있는데, 그의 상하지 어디에도 정맥라인이 잡혀 있지 않다. 자발호흡도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생체활력징후 모니터링도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소 공급을 위한 그 어떠한 장비도 그의 방안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충분한 수액 및 산소공급과 혈압 등 생체활력 징후의 적극적인 조절은 뇌내출혈 환자들의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인데, 구회장은 시점으로 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학적인 치료가 이미 종결되어 있다. 그리고 대개 이와같이 협조불능의 의식 상태에서는 영양제나 위장관 튜브로 식사를 해야만 하는데, 그에게는 영양공급을 위한 그 어떠한 수단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와같이 급성기 치료가 종결되지도 않은 혼미 상태의 뇌출혈 환자를 의료인 없이 밥도 주지않고 집에만 방치해둔다는 것은 살인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금주 방송 분에서는 침대에 절대 안정 상태로 누워있던 그의 오른 손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눈을 살포시 뜨는 장면까지 방영되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수상 후 급성기 치료뿐만 아니라 추후 정상적인 생활로의 복귀를 위한 재활치료까지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돈 많은 거성의 회장님 댁에서는 뇌출혈 환자를 위한 그 어떠한 치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거성家 사람들은 그저 환자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치료 의지를 포기해버린 가족처럼 보일 뿐이다.

 설사 이 모든 것이 스토리처럼 구일중 회장의 계략이라 할지라도,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 들이고 속아주는 김인숙(전인화 역) 쪽 사람들 역시 문제가 많다. 그 정도 사회적 지위면 의료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을 적어도 하나 둘쯤은 알고 있을텐데, 현실 파악이 전혀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무식하거나 혹은 폐쇄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구일중 회장의 연기가 너무나도 뛰어난 나머지 의사들까지 속아버렸거나. 언론에서 떠들기로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이었다고 하니 앞으로 드라마 전개가 어찌될지는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드라마 본 후 '뇌출혈 생겨도 집에서 누워만 있으면 치료할 수 있구나'라며 검사 refuse하고 집에 갈 생각하는 우매한 사람들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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