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선 보건소와 보건지소는 신종 인플루엔자(H1N1) 백신 접종에 나서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끝났지만 산발적인 유행이 있을 수도 있고,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접종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240만 명분의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에서 공중보건을 위해 뛰고 있는 공중보건의사들은 이런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합병증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원하는 사람에겐 무료로 접종하라는 방침이 과학적인 결정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이 많이 남은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남은 백신 소진을 위해 ‘누구든 원하는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일부 보건소에는 보건지소에 몇 개씩 할당을 주며 환자에게 접종해 소진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이 남아 돈 것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 작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의 막바지에 나온 백신의 접종 순서를 정하는데 2주가 걸렸다. 조금 더 일찍 더 효과적으로 접종했더라면 지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종할 수도 있었고 대유행을 조금 더 일찍 종결시킬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내부적인 반성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백신 보급 시점에 맞춰서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이 잦아들고 그에 따라 접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만 두고 보건 당국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수십 년에 한번 찾아오는 인플루엔자 대 유행이었기에 사실상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었고 다소 시행착오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국민 건강을 지켜낸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백신도 충분히 확보한 것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빠르게 대유행이 종결되어 남은 백신이 많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보건당국이 지적 받아야 할 부분은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이 남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남은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을 사실상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사람에게 접종할 것’을 종용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는 백신이 남아서가 아니라 남은 백신을 이렇게 처분하는 데서 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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