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증상을 되묻고 수많은 검사를 시행했지만 원인을 찾기 못했을 때, 의사들은 '정신적 혹은 신경인성'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환자는 자신의 명확한 신체적 증상을 정신적인 것으로만 단정짓는 의사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원인 모를 자신의 증상에 대한 나름의 설득력 있는 이유라 여기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모두가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되기도 한다.  즉, 병원 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 지는 의사와 환자간에 합의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때론 숨어있는 문제를 가리워 좋지 않은 예후를 낳기도 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실제로 신경정신학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가능한 최대한의 검사를 환자에게 권유한다. 하지만 시공간의 한계 및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환자는 권유받은 검사의 진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채 병원 생활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환자가 호소했던 문제는 다시 '신경정신학적'이었음이라 잠정적으로 결론내려 진다. 하지만 몇일 뒤 호전되는가 싶었던 증상이 재발하고, 환자는 이전에 방문했던 병원을 돌팔이라 씹어대며 또 다른 병원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정신신경학적 문제에 기인한 증상이라는 결론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환자가 최근 한명 있었는데,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이전의 병원들에 대한 비난과 분노를 뿜어댔다. 수십번의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며 이곳 저곳 한참을 방황하다 결국 마지막에 찾은 곳이 우리 병원이라고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MRI 등 대부분의 검사를 이미 시행받았던 환자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검사나 치료는 많지 않았고, 우측 하지의 주관적인 운동력 저하와 근위축이 주소였던 그에게 결국 혈관조영술을 권유할 수 밖에 없었다. 100만원 가까이 소요되는 값비싼 검사에 환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의료진의 강권에 '될대로 되라. 안고치면 두고보자'라는 식의 씨니컬한 반응과 함께 마지못해 시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허나 검사결과는 의외였다. 환자의 캐릭터나 이전 병원의 검사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기질적인 문제보다는 정신적인 문제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우리에게도 검사결과는 써프라이즈였다. 하지 혈관조영술을 시행받았던 그 환자의 문제는 장골동맥협착, 그것도 양측 모두가 상당히 좁아져 있었다. 이후 협착된 혈관을 늘려주기 위한 스텐트 및 풍선 확장술이 양측 모두에 시행되었고 이후 환자가 호소했던 증상은 상당수 소실되었다. 혈관중재술로 증상이 호전된 환자는 이전의 병원 의사들을 돌팔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했고, 반대로 근본적인 해결을 도왔던 우리를 영웅으로 추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웅대접이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전 병원의 의무기록 복사본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환자는 하지혈관 CT 및 혈관조영술을 권유받았지만 거절했던 기록도 있었고, 그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처방받았던 항혈전제 복용도 게을리 했었다. 본인 스스로 추가적인 검사를 거절하고 예방적 치료에 대한 성의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시행한 검사에서 발견된 결과물만 놓고 이전 병원의 의료진을 비난하는 그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아마도 우리 병원에서 조차 문제에 대한 원인 및 해결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면 다른 곳에 가서 이곳을 분명 비난하고도 남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가끔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진단을 위해 필요한 검사 그리고 그 검사가 진행되도록 환자를 설득하는 일은 항상 어렵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진단을 위한 의료 기기들은 수도없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며, CT나 MRI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기기들이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비용의 한계로 인해 그 모든 검사를 시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환자의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꼭 필요한 검사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대개 특정질환의 진단을 위한 합의된 프로토콜에 따라 검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어떤 기기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기계라는 것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라 100% 진단을 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위양성과 위음성률을 고려해서 판단해야만 한다.

 헌데 이렇게 검사를 하더라도 증상을 유발하는 가려진 문제점까지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 1%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환자에게 값비싼 검사를 권유하는 일 역시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의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실제로 임상에서는 특정 질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약속된 프로토콜대로 검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이 소견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특히 반복적인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경우 더더욱 '정신적 혹은 신경인성'의 가능성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의료장비의 한계가 명확히 존재하는 중소형 개원가 병원의 경우 이러한 판단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물론 소개한 환자의 경우, 장골동맥의 협착을 뚫어주고 난 뒤에는 증상이 좋아졌지만 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지 못했더라면 우리들 역시 또다른 돌팔이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의사 역시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단의 상당부분을 검사기기에 의존해야만 하며 검사기기의 퀄러티에 따라 때로는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거나 이전에 발견되었던 것 과는 또 다른 소견이 관찰되는 등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개한 사례처럼 대학병원급에서만 활용 가능한 기기를 이용하여 발견된 문제들이 개원가 병원의 검사장비 수준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의사라면 누구나 환자 앞에서 최선을 다 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위와 같은 현실적 한계로 제한된 검사를 통해서 내린 의사의 진단은 추가적인 검사 시행 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의사는 그 진단이 100%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며, 환자는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내린 주관적인 의사의 판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조건 정신적 or 신경인성 문제로 몰아가는 돌팔이라고 비난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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