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1. 추석만큼은 쉬고 싶었던 한 맏며느리

 3개월 전부터 지속된 허리 통증으로 추석 3일전 수술을 결정하고 입원했던 환자. 40대 중반이었던 그녀는 추석 당일인 오늘조차 찾아오는 가족없이 홀로 외롭게 보내야 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 슬며시 다가가 송편 한조각을 건네며 인사를 나눴다.

예상외로 나름 뼈대있는 집안의 맏며느리였던 그녀는 가족들이 찾지 않은 외로움보다는 명절 차례상 준비에서 해방된 기쁨이 더 컸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어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갔다. 문득 고향에서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 어머니도 연휴 내내 송편을 비롯한 차례 음식 만들랴, 일가 친척 등 손님 접대하랴, 집안 청소에 설거지까지 단 하루도 손에서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명절이 끝날 무렵엔 두통과 함께 온몸이 쑤셔 몇일은 잠을 제대로 이루질 못했다.

민족의 대명절인 연휴기간 동안 부엌과 거실, 안방 사이에 있는 지옥의 문에 갇혀 냉장고와 조리장치와 밥상, 싱크대를 벗하며 지내는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추석은 명절이 아니라 노동절이었던 셈이다. 올해도 명절증후군으로 병원을 찾을 중년의 여성 환자들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2. 나이롱 모녀

 2010년 9월 19일, 모녀는 추석을 맞이하여 차를 몰고 고향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올 추석에는 반드시 시골집으로 내려오라는 시어머니의 불호령에 마지못해 고향길로 향하는 두 모녀의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런 두 모녀에게 서울 톨게이트 부근에서 발생한 2중 추돌 사고는 어찌보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고는 경미했고 인적-물적 피해는 미미했다.

하지만 두 모녀는 119에 의해 실려와 병원 응급실에 大자로 누워버렸고, 검사결과 큰 이상은 없으니 외래로 오라는 응급실 당직의의 권고를 무시한채 무조건 입원시켜 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그 소란은 때마침 응급실을 지나가던 우리과 대장님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길로 입원이 확정되었다. 주사 치료도 거부한채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두 모녀는 병실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병실 안에서 과자를 짝짝 씹어대고 TV를 보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 오전 과장님 회진 때, 세상에서 제일 아픈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흐느끼고 있는 그녀들이 어찌나 밉던지, 으- 얄미워.


3. 화투치던 이노인

 74세의 할아버지는 추석을 맞이하여 자식들에게 받은용돈으로 동네 노인네들과 화투놀음을 벌이고 있었다. 세번째 판까지는 따는듯 싶더니 내리 일곱판을 졌고, 분에 못이겨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함께 화투를 치던 김노인에게 버럭 화내다 뒷목잡고 쓰러져 응급실을 찾아왔다.

내원 후 시행한 Brain CT에서 우측 기저핵에 작은 뇌출혈 소견이 관찰되었다. 다행히 수술적 치료가 필요치 않은 미미한 양이었지만 중환자실 입원 치료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즐거운 한가위를 아들, 딸, 손주들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추석날 아침 송편을 한입 베어물고 중환자실로 들어서는데, 홀로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워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송편 하나를 꺼내서 할아버지 입속으로 쏘옥 넣어드렸다. 손주들이 앞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무척이나 보고 싶었지만그럴 수 없었던 이노인은 손주들이 병문안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4. 버섯?


 추석날 응급실을 내원하는 80% 이르는 환자들의 진단명, 그중 시장에서 구매한 버섯을 먹고 발생한 복통, 두통, 어지럼으로 응급실을 찾았던 한 가족 무리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버섯을 어떻게 잘못 먹었을까, 궁금하다.

역시 먹을거리가 풍성한 민족 명절답게 수많은 복통 환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이들 역시 추석날 저녁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 부디 맛있다고 대책없이 먹어대지 말고 적당량만 꼭꼭 씹어드시길. 야생버섯은 절대 복용 마시고. 그나저나 외상 환자 적은 것은 정말 내겐 큰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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