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눈에 띄게 불친절해진 나를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몇분만 짬을 내어, 몇계단 더 걸어가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곳에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환자의 가족들에게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서른해 남짓 살아오면서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병원 신세를 졌던 일이 없었기에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오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콜을 받고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응급실로 향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정보에 의하면 환자는 새벽녁 길가던 와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만취한 상태였기에 정확한 의식 상태의 평가가 어려웠다고 했다. 사전에 이런 고급 정보를 입수한 나는 응급실 차트를 확인하고 환자의 의식 상태가 정상인 것을 확인한 연후에 보호자들에게 다가가 '신경외과에서 왔습니다. 혹시 술을 얼마나 드셨을까요?' 라는 말을 첫인사로 건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보호자들의 액팅 융단 폭격.

 머리에서 증기를 뿜어냈던 보호자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사고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들어보니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는 취객이 아니었고, 오히려 아침 운동 중 변고를 당한 음주운전 사고의 피해자였다. 응급실 초진을 봤던 인턴 선생이 퇴근을 서두르느라 이야기를 대충 듣고 차팅을 한 것이 화근이었고, 응급의학과 1년차 선생은 차팅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노티했으며, 그 사실을 나는 여과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는 평소에 나의 장난끼와 결부되어 결국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르는 원인을 제공했다. 의사로서 신체적 문제의 진단과 치료는 이루어냈을지언정,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치유하는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늘 보던, 그저 그런 외상 환자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던 안이한 생각이 불러온 참사는 결국 그 환자와 보호자들과의 라뽀 형성의 실패를 맛보게 했고, 수십번을 설명했지만 한번 돌아선 그들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기엔 내 능력과 인내가 부족했다. 결국 회진 때도 서로 등을 져야만 하는 묘한 상황까지 연출해야만 했고, 나에 대한 불신은 곧 환자 치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나뿐만 아니라 초진 차트를 잘못 기록했던 선생은 보호자들 앞에서 곤혹을 치뤄야만했고, 또한 그는 나의 빗발치는 원성과 잔소리도 감내해야만 했다.

 환자를 진료할 때 조그만 것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참 많다. 특히나 환자-의사 관계가 단순히 의학적인 질의응답만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속에서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 그리고 희.노.애.락을 발견하고 녹아들게 만드는 일은 늘 어렵다. 특히나 지식 수준이 높아질 수록 더욱 이와같은 작고 세세한 문제들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학창시절 의료윤리 시간에 그토록 귀 따갑게 들었던 환자의 아픈 마음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참의사가 되기란 역시 쉽지만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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