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힘든 한주를 보내고, 열시간 남짓 오프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서는 길은 너무나 쓸쓸했다. 다크써클이 눈물이 되어 흐를 정도로 피로에 찌들었던 몸을 이끌고 찜질방으로 향했고, 옷을 벗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핸드폰 시계를 열어보았고, 시계바늘은 새벽 1시 반을 알리고 있었다. 더 쉴 수 있었지만, 밤을 새가며 바쁘게 뛰었던 새벽의 기억과 걱정스러움 때문인지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병원을 향했다. 병원 문턱을 넘어 중환자실을 지나 당직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나가기 전까지만해도 꽉 차있었던 재원 환자를 알리는 전광판이 듬성듬성 비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윽고 중환자실 간호사로부터 그 짧은 시간동안 두명의 환자가 동시에 arrest가 나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중 한명은 뇌종양으로 보존적 치료를 시행받던 80세 할머니였는데, 이틀전부터 시작된 다량의 혈변으로 내시경적 지혈을 시행했지만 이후에도 증상은 지속되었고 결국 출혈을 매우기 위한 다량의 수혈로 인한 파종성 혈관내 응고(DIC)에 빠졌고, 바닥을 보였던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끝내 올리지 못해 숨을 거두었다. 전날 밤 할머니의 혈변을 해결하기 위해 내과와 영상의학과에 분주히 연락하며 끝까지 살려보려 애썼던 지난 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나 폐렴 등의 전신 컨디션이 회복되는 추세였고, 2~3일 정도만 더 지켜보다 병동으로 나갈 플랜이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욱 가슴아펐던 것은 또 다른 사망 환자 때문이었다.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로 코마에 빠진채 응급실에 내원했던 그 환자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응급실에서 그 환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낯익은 얼굴이라 생각했었지만, 말이 없는 코마 상태였고 보호자도 주변에 없었기에 그저 피로 때문에 헛것을 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원무과에서 환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보호자가 병원에 당도하였을 때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바로 그 환자는 그날 퇴원했던 신경외과 입원환자였기 때문이다.

 내원 전날 뇌혈관조영술 설명을 위해 할머니와 이런저런 장난을 주고 받았었고, 당일 오전 시술받은 후에도 치킨을 시켜달라며 주거니 받거니 농담을 나누었다. 헌데 채 여섯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 눈 앞에 코마인 상태로 누워있다니 이보다 드라마틱하고 영화같은 일이 어디있을까. 예정대로라면 다음날 급격하게 커진 뇌동맥류에 대한 색전술을 받아야 했지만, 11월에 예정된 아들의 결혼식 만큼은 무사히 치룬 뒤 수술받고 싶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위험성을 설명하고 퇴원했던 것이 바로 당일 오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시한폭탄은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던 모양이었나 보다. 그 동맥류는 결국 퇴원 여섯시간만에 파열되었고, 결국 할머니를 죽음의 길로 이르게 했다. 아들에 결혼식도 보지 못한채 눈을 감아야 했던 할머니는 그렇게 내 가슴에 또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동의서를 작성할 때 나와 한참동안 농담을 주고 받았던 그 할머니의 딸은 나를 붙잡고 한참을 울먹였지만 나는 그 어떤 위로도 감히 건낼 수 없었다.

 한번씩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흰 가운 입고 환자들 앞에 서서 검사를 하고 처방을 내는 일이 두렵다. 또한 내가 지금 내리는 판단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진정으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역시 나는 큰 의사 그리고 좋은 의사가 되기는 글렀나보다. 신경외과 학회 시즌과 더불어 병동 환자들이 다발적으로 나뻐진 탓에 바쁜 한주를 보냈지만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것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악화 되어가는 환자들, 특히 오프나간 사이에 벌어져 임종조차 곁에서 지키지 못했던 두 할머니의 죽음은 아마도 평생 내 가슴 속의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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