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의식저하를 주소로 응급실로 실려왔던 초등학교 6학년 뿡양은 EVD(뇌실내 도관) 삽입과 동시에 정상적인 의식 상태로 회복되었다. 소뇌부근에 발생한 출혈의 원인을 찾기위해 시행한 CT angio(뇌혈관CT) 검사 도중 기면 상태였던 의식이 혼미 상태까지 쳐지면서 동공이 완전히 열렸고, 그 즉시 뒤도 안돌아보고 수술방으로 밀어넣은 신속함이 주요했던 순간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MRI 등의 몇가지 검사를 마치고 난 뒤 우리는 그 아이의 병명이 소뇌부위의 뇌종양이라 결론내렸고, 내원 당시의 의식저하는 종양으로 인해 뇌실 순환로가 막혀 발생한 급성 수두증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형종이 의심되는 그 종양은 무시무시하게도 생체 활력징후를 담당하는 뇌간을 감싸고 있었고, 수술적 제거는 상당히 어려워보였다. 응급 수술 덕에 총 250cc에 이르는 뇌척수액이 머리안에 삽입된 도관을 통해 배액되었고, 의식 회복 후 눈동자의 움직임 장애를 제외한 별다른 신경학적 결손은 관찰되지 않았다. 의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 소녀에게 장소, 시간, 사람 등에 대해 물었고, 대부분 정확한 대답을 해냈지만 '오빠가 배용준 닮았지?'라는 말에 입을 꽉 다물고 짜증늘 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중대한 문제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잠시 나를 엄습해오기도 했다.

 주치의 교수님은 소아 뇌종양의 대가인 원장님과 상의 끝에 수술 결정을 내렸고, 다가오는 화요일이면 그 아이는 수술침대 위에 눕게 될 것이다. 수술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동안 그 아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시간 날때마다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가끔은 먹고 싶다는 햄버거도 사다주며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끝내 그 아이는 '오빠 배용준 닮았지'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았고, 때마다 나는 크게 낙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수술을 앞둔 12살 소녀에게 차마 강요나 압박을 가할 수는 없었지에, 아이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하기 위해 화장실 거울 앞에서서 이 각도 저 각도 얼굴을 돌려보았지만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식사도 직접 떠먹여주고, 엄마 몰래 소세지도 가끔 주고 먹기 싫다는 채소도 대신 먹어주었지만 끝까지 나를 배용준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 소녀가 얄미웠다. 하지만 나도 한 사람의 의사로서 어찌 수술 전날까지 그 소녀에게 내 뜻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수술 후 상태가 어느정도 안정되면 다시 한번 오빠는 배용준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혹시나 수술 후 오빠는 배용준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confusion(혼동)이라도 생기면 어떻할지, 걱정이 앞선다. 내 도전이 다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소녀가 무사히 수술을 받고 건강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오빠의 도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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