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은 내게는 참으로 특별한 날이었다. 실습생 시절이나 인턴, 그리고 올해 일년차 일을 하면서 수술방은 문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단 한순간도 주어지지 않았던 집도의로서의 기회가 내게 찾아온 것이다. 비록 고난이도의 전신마취 하 개두술이나 공식적인 집도식은 아니었지만, 한 환자의 피부를 절개한 후 덩어리를 떼내고 마무리 정리까지 담당했던 참으로 설레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병동 일을 하며 응급실 콜을 받고있던 찰나, 교수님의 수술준비하고 연락하라는 불호령에 거진 6개월만에 들어선 수술방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피의 양성 종괴를 떼내기 위해 외래를 통해 찾아온 한 할아버지를 수술침대 위로 안내한 후 면도기로 머리카락을 밀고 빨간 포다딘으로 수술부를 소독했다. 이후 녹색의 소독포를 여기저기 덮었고, 할아버지에게 금방 끝날거라는 안도의 말을 전한 뒤, 리도케인 주사기로 국소마취를 시행했다. 수술부 위로 덮힌 스킨 테입을 보비로 지져대면서 하얀 속살이 살포시 모습을 드러냈고 차츰 종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들어온 교수님과 함께 캘리로 종양을 마구 뜯어냈고 보비와 앨리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꽤 컸던 종양의 대부분을 완전히 제거했다. 그 누구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펐기에 어씨스트는 커녕 수술 내내 '그것도 못자르냐', '썩션 못한다', '필드 확보 못한다' 등 잔소리 듣느라 바뻤다.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교수님께서 수술방 어시스트 경험이 전무한 일년차 나부랭이에게 지혈과 봉합하는 마무리를 맡기지는 않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교수님은 종양을 떼내고 피가 흐르는 상황 속에서 '마무리해'라는 4마디만 남기고 홀현히 수술방을 떠나버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차분히 마음 속으로 남겨진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일단 수술 내내 울려대던 병동 콜을 인턴 선생에게 맡기고, 일년차의 복귀까지 앞으로 최소한 한시간 이상이 남았음을 알렸다. 당장 환자의 바이탈이 흔들리는 콜이 없음을 확인한 후 다시 수술 필드로 복귀했다. 두번째 걸림돌은 지혈. 앨리스를 이용하여 출혈 부위 곳곳을 지져댔다. 반복되는 지혈과 세척에도 불구 여전히 피가 이곳 저곳에서 차올랐고, 결국 한계에 부딪힌 나는 근육층 기저부에 피하층을 봉합하여 지혈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 장장 7cm에 이르는 수술 부위를 차분히 봉합했다. 인턴시절, 정형외과 픽스턴을 하면서 남들보다 봉합의 기회를 많이 얻었던 것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할아버지를 수술방 밖으로 안내해드렸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내내 지혈을 완벽히 못했던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고, dead space(사강) 생성을 방지하기 위해 차라리 붕대로 칭칭 동여매는 것을 당시에 미쳐 생각지 못한 아쉬움도 컸다. 걱정스런 마음에 차트를 뒤적이며 할아버지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찾기위해 애썼지만 기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Wrong number doo doo doo'뿐이었고, 급기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주소를 인터넷 검색창에 띄워보기도 했지만 부동산 안내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다음날 외래로 달려가 할아버지에 관한 정보를 물었고, 다행히 3일 뒤 외래 예약이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다리는 3일동안 '혹시나'라는 초조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했고, 그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감염이나 재수술 결정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운을 벗고 도망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제자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교수님에 대한 배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죄송스런 마음마저 들었다.

 3일 뒤, 환자는 외래로 찾아왔고, 우연찮게도 외래 일을 보고 병동으로 올라가던 중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님의 진료를 보기 전에 환자의 상처를 열어볼 수 있었고, 혈종이나 감염의 징후 없이 가지런히 깨끗하게 나아가는 상처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외래와는 별도로 이틀마다 소독을 위해 병동으로 올 것을 당부드렸고, 그 약속은 6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아직까지 나의 수술방 첫 데뷔전은 성공적인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국소마취 하에 이루어지는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서 준비하고 마무리한 것에 대한 흥분과 감동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나는 surgeon으로서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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