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로마황제들이 전쟁에 이겨 잔치를 베풀 때 전사한 적들의 시체를 잔치 마당에 늘어놓고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며 건배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잔치를 벌이지만, 언제 저 해골 꼴이 될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외쳤다고 한다.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경구이리라.



벽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가 조금 못되었다. 생전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간밤의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을 나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의 차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쌩쌩 달리는 것이 아니라 숫제 보다 날아간다. 병실에 친한 친구의 장인이 누워있다. 산소를 흡입하고,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불규칙한 호흡을 하고 있다. 침대 곁에는 심장 상태와 혈액 속의 산소포화도를 모니터링 하는 기계가 놓여있다. 생에 대한 미련이 그리 많은 걸까? 이젠 편히 쉬셔도 좋으련만...

한 달 조금 넘게 지났을까. 김해에서 학원을 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장인이 위암말기라면서 내게 상담을 원했다. 그 날 저녁 친구 장인 댁에서 저녁을 먹었다. 친구의 아내가 차려 내온 추어탕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워버렸다. 친구가 내민 봉투 안에는 서울 모병원에서 복사해온 두툼한 의무기록사본이 들어있었다. 위암을 올 봄에 진단을 받았는데 이미 췌장까지 번진 상태였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가 대형병원에서 수술은 못하고 위와 십이지장 부위에 음식이 내려가라고 스텐트만 박은 채로 내려왔다.

식사라고는 한 숟가락 정도 먹는데 속이 메슥거리고 토한다고 했다. 풍채가 좋았던 분이 살이 빠져 볼이 쑥 들어가 있었다. 서울에서 의사가 여생이 석 달 가량 남았다고 말했지만, 이미 여섯 달이 다 되어갔다. 통증이 심하여 마약진통제를 붙이고, 먹고 있었다. 딱히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에 간들 별로 해 줄 것이 없어 보였다. 호스피스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당신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드리고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밖에는...

호스피스(Hospice)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말한다. 호스피스라는 어원은 중세기 때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이 하룻밤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한 숙소를 일컫던 말이다. 요즘은 삶의 마지막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쉬어가도록 돌봐 주는 것을 뜻하며, 특히 말기 암환자를 전적으로 돌보는 것을 호스피스라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선종봉사라고 부른다. 육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서적, 영적문제를 전인적으로 다루며 사랑으로 돌봐줄 때 그것을 호스피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호스피스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친구의 장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그동안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면서 병간호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고생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2인실에 두 분을 입원시키고, 호스피스를 하게 되었다. 마약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하고, 복수가 차면 복수를 빼드리고, 가래가 차 호흡이 힘들면 가래를 빼드리고, 소변줄 꼽아드리고, 틈만 나면 병실에 올라가서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리는 게 다였다.

입원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간호사가 호출을 했다. 혈압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눈꺼풀이 하다. 암 덩어리에서 출혈이 생긴 것이다. 마침 그 날이 호주로 시집을 간 가장 보고싶어 하던 막내딸이 출산을 한 날이었다. 한 생명은 꺼져가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수혈을 하고, 수액을 투여하면서 승압제를 써서 소생술을 시행했더니 의식도 돌아오고 가족들과 눈빛으로 말도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전송되어 온 외손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일주일 뒤. 친구의 장인은 눈을 감았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환자의 목숨을 생각대로 고무줄처럼 늘리거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새벽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심전도는 더 이상의 파동을 보이고 있지 않았고 거의 일직선이었다. 동공은 확장되어 있고, 자발적 호흡도 없었다. 사망선고를 내렸다. 가족들은 오열을 했다. 다음날. 난 장례식장에 갔다. 빈소의 사진은 풍채가 좋은 분이 웃고 있었다. 순간, 다른 사람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렇게 암이란 병은 죽을 때까지 환자를 피골이 상접하게 만든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절을 하며 고인의 말이 떠올랐다. 숨쉬기 힘들어하면서도 딸에게 ‘선생님, 추어탕 끓여드려라.’고 하시던 말...

우리는 언어생활에서도 ‘죽는다’는 말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나무가 시드는 것을 ‘나무가 죽는다’고 하고, 소리가 낮아지는 것을 ‘소리가 죽는다’고 하며 기가 꺾이는 것을 ‘기가 죽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을 감다’ ‘세상을 등지다’ ‘세상을 뜨다’처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에둘러 표현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속담처럼 우리나라 사람에게 죽음은 정결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우리는 실제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는 거꾸로 ‘삶을 기억하라’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린다. 죽음을 잊으면 삶마저 잊히는 걸까? 죽음을 가까이 둘 수 있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언제나 바로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의 의미가 더욱 값지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메멘토 모리! /플라치도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