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처럼 애매한 구호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화끈하게 ‘무상’을 외쳐야 관심을 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이제 급진적 진보주의자들만이 ‘무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 1 야당에서 나오는 구호가 ‘무상’ 시리즈다. 이 ‘무상’이라는 단어의 파급력은 엄청나서 이제는 여야 할 것 없이 이 ‘무상’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상급식은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모른다. 돈이 많이 들기는 하겠지만 학생수가 예측가능하고 이리 저리 세금을 돌려서 만들 수도 있는 비용이니 말이다. 하지만 의료 부분은 상당히 다르다. 이미 재정적자가 심화되고 있고 그 비용이 엄청나게 크다. 앞으로 다가올 고령화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부담해야할 의료비가 더 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상 의료의 혜택을 누린다면 정부는 그 비용을 어떻게든 충당해야하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국민 건강보험료 징수나 세금을 통해 확충해야한다. 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무상’ 의료는 다분히 정치적 구호로만 들린다.

물론, 무상의료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무상 의료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 의료의 질을 어느 수준으로 맞추는가에 따라 가능할 수 있다. 또 일각의 주장처럼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환자를 위한 '무상 의료'가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사례들을 보자.

위궤양으로 피가 나는 환자에게 내시경 클립으로 출혈을 잡는 것은 현재 보험에서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입원만 하면 밥값의 절반은 건강보험에서 돈을 대준다.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의 응급처치 치료대(클립값)보다 밥값을 먼저 보험 적용해준 근거는 무엇일까? 증명할 길은 없어도 짐작할 수는 있다. 대중적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고 그 말은 정치적으로 지지를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어려운 말로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듯 하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인기영합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고양이더러 생선을 지키라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인기를 영합하기 위해 무상을 외치는 것이라면 그 의료 서비스의 내용이 질병과 의학적 중요도와 더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기’를 끌 수는 없지만 환자에게 중요한 치료가 외면될 가능성은 높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그러하다. 임상 진료를 하는 의사들은 재정을 담보로 하는 보험급여 기준과 자신이 배운 의학적 근거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하고 있다. 재정의 한계에 대해서 공감하고 고민하는 것은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그 우선순위가 환자가 아닌 인기 위주로 선정되거나 아애 기준이 없다는 것이 우리 의료계의 가장 큰 문제다.

지금 보건 의료 문제에 손을 대려면 '무상'이 아니라 주먹 구구식의 보험혜택 적용이다. 국민들이 생각했을 때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기준을 세우고 그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야 말로 개혁을 위한 토대를 쌓는 일이다. 지금의 '무상' 논란은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 구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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