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후배가 '응급왔숑 응급왔숑'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고 머리가 쭈뼛해졌지만 이내 장난임을 알아차리고 심호흡을 통해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 병원의 경우, 중증외상이나 급성 뇌혈관질환 등 신경외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응급실을 내원하는 경우 전공의들에게 '응급왔숑 응급왔숑' 문자가 날아온다. 상태가 좋지않은 환자들의 조속한 응급치료 및 입원결정을 돕는 시스템이라지만 어차피 응급 수술이 필요한 케이스는 알아서 빨리빨리 해결하는 신경외과 의사들에게는 그저 한낱 귀찮은 족쇄에 불과하다. 여기에 응급실 노티 시각을 기준으로 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스텝(교수)에게 진료를 재촉하는 문자 전송 시스템까지 도입되어, 전공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지난주처럼 일년차가 수술방에 하루종일 매달려있는 날에는 쌓여가는 콜벨 때문에 피로가 배가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응급실로 내려가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을 내는 일이 끝이 아니다. 과의 특성상 환자의 양은 많지만 보호자가 수배되지 않은 외상 환자, 전반적인 컨디션이 현저히 떨어져 보이는 노숙 환자, 의식이 온전치 않은 고령의 환자 등 환자의 퀄러티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때로는 탐정이 되어 환자의 온몸을 수색하고, 보호자를 수배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 경우 꼼짝없이 응급실에 몸이 매여있어야 하기 때문에 병동과 수술방에 깔려있는 수많은 일들을 정상적으로 처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지갑 등의 소지품을 통해 환자의 일상을 그려보고, 그 상상을 토대로 환자의 수상기전을 추정하고, 보호자를 수소문하고, 입원가능 여부를 따져보고, 치료방향 등을 결정해야만 한다. 오늘도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무명남이 둘이나 응급실을 찾아와 뇌출혈 진단 하에 입원했는데, 그 중 응급 수술했던 케이스는 환자의 보호자를 찾는 일에 오늘도 수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신경외과 일년차에게 응급왔숑 콜은 그리 반갑지 않다. 계획에 없던 응급환자의 출몰은 당일 업무를 지연시키고,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한창 바쁠 때 찾아오는 응급왔숑 콜 때문에 공연히 응급실 인턴 선생이나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당장 수술적 처치를 요하지 않는 환자의 경우 오더만 내놓고 장시간 깔아놓기도 한다.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새벽녘 특히 3~4시 사이에 오는 응급왔숑 콜은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분노 게이지를 풀 파워로 가동케하여 나로 하여금 불평, 불만, 불친절의 화신이 되게끔 한다. 간혹 깊은 잠에 빠져들어 연락은 받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응급왔숑 콜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목에 칼이 들어오는 섬뜩함을 느낀 적도 몇번 있었다. 여튼 매일 잠들면서 나는 기도한다. 제발 응급왔숑 콜이 나를 피해 저멀리 다른 병원으로 가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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