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3학년 눈 내리던 겨울,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떠난 참선 여행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다. 도심과는 한참 떨어져있는 어느 깊은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우리는 부푼 마음을 안고 떠났다. 2년전 이곳에서 악몽과도 같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과감히 사전답사를 단행 우리만의 먹거리를 산자락 여기저기 숨겨놓는 일도 잊지 않았다. 겨울을 나기위해 다람쥐가 가을철 열심히 모아둔 도토리를 이곳 저곳에 모아두는 것처럼, 선발된 답사팀은 각종 주류와 안주거리를 암자 문턱, 개울가 큰 바위 밑, 뒷산 소나무 앞 등에 고이고이 묻어두었다. 행여나 묻어둔 곳을 잊어버릴까 두려워 대웅전에서 뒤로 열걸음, 옆으로 세걸음,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서 열네걸음. 한달 뒤 만남을 기약하며, 실수가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막무가내로 땅을 파는 우리를 발견한 일곱살배기 동자승은 우릴 향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왔다. 마침 주머니에 갖고 있었던 키세스 쵸콜렛을 한움큼 끄내주며, 조용히 그 동자승의 입을 틀어 막았다. 한참을 킥킥대면서 비밀은 내가 지킬터이니 걱정말라는 음흉한 미소를 남긴채 동자승은 돌아갔고, 미심쩍긴했지만 키세스의 힘을 믿기로 하고 짐을 챙겨 하산했다. 아마 2주 뒤쯤이면 맛있게 익어있을 김치와 장작불에 함께 구워먹을 고구마, 그리고 각종 마른 안주와 막걸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피날레 발렌타인 30년산까지. 3년전 예과시절, 옥수수나 고구마 줄기를 뜯어 먹으며 진부한 통기타 소리에 흥겨워하는 꼬꼬마 학예 잔치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각오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대망의 D-day. 산 밑에서 암자까지 5km에 이르는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 올라갔다. 사전 답사 때와는 달리 수북히 쌓인 눈 때문에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보물이 묻혀있는 세 곳 중 한 곳은 접근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발렌타인 30년산이 묻혀있는 대웅전의 그곳만은 아직 안전했다. 입소식 전 잠시 짬을 내어 머릿 속 깊숙히 새겨두었던 보물상자의 위치 찾는 연습을 수백번 반복했다. 한 처사님이 뭘 하느냐 물어도 오직 성불하라는 대답 외에는 아무런 말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신성한 보물을 찾는 일에 마가 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입소식, 염불, 좌선, 강좌로 이어지는 수면제 폭풍크리는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되었지만, 모두 하나되어 굳건한 불심으로 그 고난을 이겨냈다. 오직 저 땅 속 깊숙한 곳에서 핼프미를 외치는 우리의 친구들을 한시라도 빨리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낭독했다.

 둘째날 저녁 8시. 해가 지고난 어둠을 틈타 보물탐사는 진행되었다. 암자 창고에 있는 호미를 들고, 대웅전 앞에서 우리는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뒤로 열걸음, 옆으로 세걸음,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서 열네걸음. 따스한 낙엽의 냄새와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불상이 보이는 그곳,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그곳이었다. 일단은 눈더미를 미친듯이 치우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혹시나 술병이 다칠까봐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흙과 돌무더기를 파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그곳에 있어야 할 우리들의 보물은 아무리 땅을 파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 주변을 한참 파내다 지친 우리는 결국 묻어둔 보물을 찾지 못했고 맥없이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훗날 학교를 졸업하고 찾아가 웃으며 물었더니, 그때 그 동자승 꼬맹이가 우리들의 만행을 모두 원장님께 고했고 묻어둔 보물은 그 다음날 모두 수거, 폐기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끓어넘치는 젊음과 열정은 좌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코올을 요구했다. 동아리 선배였던 지도 교수님께 상의드리니 15년전 본인은 이곳에서 3시간의 사투 끝에 산 하나를 넘어있는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공수했던 적도 있다며, 좌절하지 말라 우리를 격려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저질스러워진 아이들의 체력과 수북히 덮힌 눈은 그 어둠을 틈타 산자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민가침탈. 5km 정도 거리에 민가 6~7채가 모여있는 마을이 있다는 고급정보를 입수하고, 정예부대를 조직하여 반드시 구해오겠다는 결의를 다진 후 산 아래로 향했다. 조심스레 대문을 두드리고 달달한 그것이 있는지 물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몇몇 집에서 먹다남은 소주, 맥주, 막걸리 등을 소정의 댓가(?)를 지불하고 얻을 수 있었다. 창고에서 몰래 가져온 고구마와 김치, 마을을 돌면서 약탈한 술을 한데 모아 깊은 산골에서 달빛을 안주삼아 우리만에 파티를 즐겼다. 특히 할아버지 앞에서 장기자랑을 통해 얻은 직접 담근 인삼주의 맛은 가히 최상급이었는데, 술을 비우고 난 뒤 씹어먹는 인삼의 향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추웠던 본과 3학년 겨울은 그렇게 후배들과의 따뜻한 추억만을 남긴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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