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즘에도 말턴에 관한 글을 쓴적이 있다. 말턴, 말년 인턴으로도 불리우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과도 같은 이 계급층은 시키지 않으면 보지도, 듣지도, 하지도 않는다는 신념 아래 1년차와 병동 간호사들의 또다른 주적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다닌다. 특히 말리그 말턴을 제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 밤 열두시가 지나면 신데렐라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연락조차 되지 않고, 제 멋대로 시간을 정하여 오프를 나가버리며, 아프다는 핑계, 픽스된 과에서 부른다는 핑계, 가족이 아프다는 핑계,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핑계 등 삼라만상의 108번뇌 보다도 더 많은 고민과 아픔 때문에 인턴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말턴의 스킬은 가히 원내 최고급이다. 던지기만 해도 백발백중이라는 ABGa(동맥혈가스검사)부터 소변줄 끼우기, 수술 준비하기, 검사 푸쉬하기 여기에 논문해석, 서류정리, 엑셀파일 만들기 등의 잡무는 그 어떤 비서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훌륭하다. 허나 요즘 시대에 모두들 기피하는 3D 직종인 신경외과 나부랭이 같은 곳에서 엑설런트한 1~2월 말턴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이 시절 말턴들은 인턴 잡을 가려서 하고, 병동 콜 정도는 가볍게 씹어주며,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으면서 얼굴엔 여유가 넘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과를 돌았던 1월 인턴 선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했다. 소변줄 교체나 욕창 소독 따위는 어지간해서는 쳐다보지도 않고, 중환자 침대를 나르는 일에는 손하나 꿈쩍하지도 않는다. 기도삽관이 되어있는 환자들의 앰부질은 물레방아간의 떡매질보다도 더 느리며, 응급 떴으니 빨리 오라는 일년차의 콜에도 눈썹하나 끄떡하지 않고 천천히 커피까지 즐기며 여유있게 응급실로 들어오기도 했다.

 허나 나는 이해했다. 그 선생처럼 나 역시 현재 근무하는 병원과 다른 곳에서 인턴을 수료했고, 레지던트 과정을 앞둔 1~2월 말턴시절을 마지못해 잔류하여 일해야만 했다. 몸이 떠날거라 생각하니 마음도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번해야 할 드레싱을 두번만 하고, 새벽에 걸려오는 중환자실 콜을 무시했던 적도 있었다. 30분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두곳에서 샘플링하는 혈액배양검사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적도 많았고, CT나 MRI 촬영 동의서를 대충 설명하고 받기도 했었다. 어차피 지금과는 다른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굳이 지금 소속되어 있는 병원에서 성실히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이기적이며, 의사로서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불성실한 태도였다.

 하지만 지난달 인턴 선생에게는 참지 못하고 결국 화를 냈다. 타병원으로 떠나는 말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불성실했고, 의료인으로서 기본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 비위장관튜브 삽입 과정에서 공기를 주입하여 장음을 듣는 정상적인 확인 방법이 아닌 튜브 내로 바로 생리식염수를 주입하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을 이용하더니 결국 환자의 기도로 물을 주입하는 잘못을 범했다. 4시간 뒤 흉부 X-ray에서 흡인성 폐렴의 소견이 보였고, 이후 한쪽 폐가 완전히 망가져 급성호흡부전까지 초래되었다. 당연히 전신적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 환자는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와같은 대형사고를 저지르고도 그 선생은 전혀 반성하거나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 콜마저 씹어버리는 몰상식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에도 malfunction의 극치를 보여주며, 휴가지에서 늦게 복귀하거나 제 멋대로 오프를 나가는 등 막가파식으로 행동하다 결국 턴체인지를 이틀 앞두고는 연락두절 상태로 사라져버렸다.

 그간의 수많은 잘못에 대해서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건만, 결국 마지막까지 nonfunction과 malfunction의 극치를 보여준 그 인턴 선생 덕분에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고, 결국 폭발했다. 대개 인턴점수가 그해 10월이면 정리가 되고, 12월이면 대부분 전공의 수련을 할 병원이 정해지기 때문에 그 선생은 필시 이러한 간극을 이용하여 배째라는 식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고생하는 다른 선생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그 인턴 선생이 부디 정신차리고 참 의료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이는 막나가는 말턴의 문제가 아닌 향후 환자를 진료하게 될 한 의사의 태도에 관한 문제다. 교육수련부에 공식적으로 징계위원회를 요청하고, 더불어 트레이닝 예정지인 병원에도 공식적인 루트롤 통해 클레임을 넣을 것이다. 부디 적절한 징계 수위가 결정되고 시행되어 그 선생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라며, 더불어 이런 과정을 통해 환자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의사가 아닌 마음의 눈까지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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