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병원에서 주사 맞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아프지 않은 척도 해보고 의사 선생님께 주사 놓지 말아달라고 울며 빌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39도를 넘나드는 체온계의 눈금마저 속일 수는 없었고, 영락없이 내게는 찰싹 거리는 간호사 선생님의 맴매와 엉덩이 주사 한방이 주어졌다. 울고 불고 떼쓰는 나를 달래려 어머니는 늘 사탕을 사줬고, 그제서야 울음을 멈추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겨울철 누구나 한번쯤은 병원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헌데 병원에서 맞는 주사는 민망하게도 대부분 엉덩이에 놓는다.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럴까?

 주사를 맞는 부위는 크게 피부, 근육, 혈관으로 나눌 수 있다. 혈관에 놓는 주사가 약이 몸에 흡수되는 속도가 가장 빠르고, 다음으로 근육, 피부의 순이다. 흡수가 빠를수록 약의 강도가 세거나 몸에 맞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사의 사용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빨리 효과가 나타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며 주사는 약의 종류나 신체 상황에 따라 다른 부위에 맞게 된다. 맞는 부위에 따라 주사의 종류를 나누면 피부의 표피와 진피 사이에 소량의 약물을 주사하는 피내주사, 진피 아래의 피하지방에 놓는 피하주사, 근육에 놓는 근육주사, 혈관에 직접 바늘을 꽂는 동맥주사와 정맥주사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맞는 엉덩이 주사는 근육주사다. 특히 감기증상으로 처방받는 진통제는 NSAIDs가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쇼크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정맥보다는 근육으로 주입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또한 근육에는 혈관이 풍부하기 때문에 근육에 주사를 맞으면 흡수가 빠르다. 보통 엉덩이 근육에 맞는 경우가 많지만 팔의 바깥 위쪽에도 근육주사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주사라도 팔보다는 엉덩이에 맞는 것이 더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주사를 맞은 뒤 눌러주면 흡수가 더 잘 된다.

 더불어 엉덩이 주사를 맞기전 간호사들은 주사 맞는 것도 아픈데, 왜 그렇게 찰싹찰싹 엉덩이를 때렸을까, 한번쯤은 궁금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말 아프지 않도록 주사를 놓기 위함이다. 통증 전달에 관여하는 신경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굵고 빠른 신경과 가늘고 느린 신경이 있어서 굵고 빠른 신경이 통증 전달의 문을 닫는 역할을 하고 가늘고 느린 신경이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 주사를 놓기 전에 엉덩이를 때리면 굵고 빠른 신경이 자극되어 통증 전달의 문을 닫기 때문에 그 후에 놓는 주사의 통증이 상쇄되는 것이다. 주사 전 간호사에게 엉덩이를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사 바늘의 공포를 그대로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엉덩이 주사와 관련된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정맥주사(진경제)를 처방했는데 암막 커튼 뒤에서 바지를 벗은채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기다리던 환자도 있었고, 엉덩이 주사를 맞는데 바지를 완전히 벗어 하의가 실종된 채 팬티만 입고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고교시절 학교 앞 가정의학과 병원에 예쁜 간호사 누나를 보기 위해 주사 열풍이 불기도 했는데 너도나도 아픈 척하며 주사한방 놔달라고 병원 앞에 줄서서 기다렸었다. 물론 주사 처방을 받은 친구는 그 중 십분에 일이 채 안되었지만 엉덩이 주사를 맞고 온 친구들은 하루 종일 헤벨레했었다. 작년 한해 일년차 일을 하면서 지독한 감기에 걸려 주사가 필요한 적이 있었는데, 차마 동료들 앞에서 엉덩이를 드러내놓고 싶지은 않았기에, 삼각근에 맞았었다. 이후 감기증상은 좋아졌지만 일주일간 주사부 통증이 지속되었고, 차라리 엉덩이에 맞을껄하며 후회키도 했다. 중국에서는 31년간 엉덩이에 주사바늘을 묻고 살았던 남성도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늘어난 허릿살을 엉덩이로 오인받은 김숙같은 사람도 있었다.

 여튼 엉덩이 주사를 맞지 않은지 꽤 오래된 요즘, 가끔씩 환자들에게 엉덩이 주사를 추방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누군가 엉덩이 주사 한대 맞으라면 손사레치며 거절할 듯. 물론 아플 때 예쁜 간호사 누나에게 맞는 엉덩이 주사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와 상담 하에 꼭 필요할 때만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 잊지말고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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