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일시적인 병원 네트워크의 마비로 한바탕 큰 소동이 있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거니와 한 앰플의 처방을 낼 수도, 받을 수도 없었고, 각종 피, 이미지 검사 등의 열람이 불가능 했다.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는 주사 및 약물도 확인이 불가했고,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들의 검사 및 처치가 지연되었다. 병동, 중환자실, 검사실 심지어 응급실까지 모든 업무가 정지 되어버렸다. 환자를 직접 마주하여 검사하고, 여기저기에 연결된 가느다란 선을 따라 화면에 비추어지는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 수를 확인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당일 오더를 자정 전에 넘기지 못했던 나와 신경외과 병동 간호사들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고, 전산 복구 전까지는 멀뚱멀뚱 먼 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헌데 더 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재활병동 환자의 갑작스런 의식저하. 확인해보니 의식은 이미 반혼 수에 동공은 이미 산대되어 있었고 사지 운동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다행히 전산이 마비되기 전 CT를 촬영하였고, CT에서는 200CC 가량의 엄청난 뇌출혈이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환자가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점과 PT(INR)이 5까지 연장되었기에 응급개두술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 대신 혈종 내 배액도관을 3개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보호자에게 설명한 후 급하게 머리에 프레임을 박고, 정위CT를 찍으려던 찰나 전산이 다운되는 바람에 검사는 고사하고 처방조차 입력할 수 없었다. 응급 환자를 앞에 두고 전산이 복구되기만을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일단 정위CT를 촬영한 뒤 환자를 수술 방으로 들이 밀었다. 하지만 전산마비 탓에 CT방에서 촬영한 이미지의 확인이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배액관 삽입을 위한 좌표도 구할 수 없었다. 수술 오더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병동에 비치되어있던 약품을 주섬주섬 꾸려 챙겼고, 다운 직전의 컴퓨터에 남아있던 CT 이미지를 토대로 눈짐작으로 좌표를 구했다. 그렇게 수술은 끝났고, 2시간여만에 전산이 복구되었다. 수술 후 촬영한 CT에서 배액 도관은 그럭저럭 적당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관을 통해서 빠알간 혈액이 배액 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섬주섬 밀린 당일자 오더를 내기 시작했고, 80명의 오더가 거의 마무리 되어갈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시간 남짓. 단 2시간의 전산마비가 가져온 후폭풍은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네트워크의 시대라는 요즘,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은행 전산장애 업무마비, --병원 전산마비 등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컴퓨터와 그 연결고리인 네트워크는 이미 우리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단순한 기계와는 뭔가 다르다. 기존의 기계들이 물리적 작동을 통해 물리적 기능을 제공했던 반면, 이들은 물리적 작동을 통해, 비물리적, 비물질적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과연 병원에서 이들 없이 나는 의사로서 얼마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환자를 위한 그 어떠한 처치도 제공할 수 없었기에 한없이 무기력함만 느낄 수밖에 없었던 두 시간을 나는 두 손 놓은 채 그렇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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