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뇌동맥류 진단을 받고 뇌혈관조영술까지 시행 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자의로 퇴원했던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중뇌동맥에 하나씩 머리 속에 시한폭탄을 가진 채 살아왔다. 그로부터 일년 뒤 그녀는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의식은 혼미와 기면을 오고 가는 상태였고 CT에서는 상당량의 출혈 소견이 관찰되었다. 보호자는 남편이 있었고, 그런 그녀의 남편과 첫 대면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일 년 전 발견되었던 뇌동맥류를 뇌혈관 조영술을 통해 이미 치료했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출혈이라는 우리들의 소견에 거친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해 빠듯한 형편에 비싼 값을 치루고 겨우 입원해서 검사받고 치료받았더니 이제 와서 뇌출혈이라니 이게 웬 청천 벽력같은 소리인가. 지난해 아주머니는 진단만 받고 치료는 받지 않았다 수십 번을 설명했지만, 남편은 납득하지 못했고 결국 서로 간에 고성이 오갔다. 과다한 로딩으로 이미 악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기에 어깨너머에서 '18 18' 하는 그 아주머니의 남편에 목소리를 무시한 채 짜증내며 당직실로 올라와버렸다.

2개월이 지난 지금 그 아주머니는 여전히 혼미상태다. 응급실로 내원했던 그 다음날 파열된 우측 대뇌동맥류에 대한 코일 시술이 끝나고 중환자실 집중치료가 종결된 뒤 아주머니는 멀쩡하게 걸어 다닐 정도로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였었다. 이후 재활의학과로 전과하여 재활치료를 받던 중 이번에 발견된 반대 측의 비파열성 뇌동맥류에 대한 치료를 위해 다시 신경외과로 전과되었고, 지난주 금요일 해당병변에 대해서 코일 색전술을 시행 받았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큰 문제없이 아주머니는 회복되었다. 하지만 수술 다음날 새벽 아주머니의 의식이 갑작스레 반혼수 상태까지 저하되었고, 이후 시행한 CT에서 뇌경색이 동반된 뇌출혈이 관찰되었다. 이틀 밤을 새서 총 2번의 응급수술이 추가로 진행되었고, 교수님을 포함한 이하 우리들은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아주머니의 의식은 아직까지 깨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3주간이나 신경외과에서 치료받았었지만, 첫인상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서로를 멀리했던 아저씨와 나는 단 한마디 말도 섞지 않았다. 하지만 재활의학과에서 전과되던 날,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아저씨와 나는 서로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좋지 않았던 첫 출발을 이겨내고 다시금 새롭게 인연을 만들어 나갔고, 아저씨와 나 사이에는 조금씩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수술 하루 뒤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머리를 열고 혈종을 제거하는 세 번째 수술 직후에도, 이후 촬영한 CT에서 재출혈이 관찰되어 네 번째 수술이 끝난 뒤에도 아저씨는 예전처럼 내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부디 깨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며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는 아저씨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여전히 아주머니는 혼미상태인 채로 사경을 헤매고 있고 그런 아주머니와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함께 있고자 아저씨는 늘 그렇듯 중환자실 앞 소파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요즘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4번에 걸친 대수술을 무사히 견디어 낸 아주머니가 기적처럼 눈을 번쩍 뜨고 깨어나 아저씨와 다시 조우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랄까. 여튼 꼭 회복하기를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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