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꼴라. 프랑스 파리지엔느들이 즐겨 찾는다는 아동계의 샤넬, 구찌로 군림하고 있는 그 브랜드. 아기 관련 상표라고는 오직 맘마밀과 아가방 밖에 몰랐던 내가 쇼꼴라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얼마 전 반강제적으로 초대할 것을 요구했던 신경외과 병동 차지 널스의 아가 돌잔치, 하지만 전공의 턴 체인지 탓에 오프가 없어진 터라 참석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간 신경외과 일년차로서의 업적 그리고 이년차로서의 사회 문화적 지위는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게끔 요구해왔다.

고민 끝에 잠시 짬을 내어 병원 바로 앞에 있는 백화점에 들렀다. 아가방, 아기 리바이스 등 익숙한 브랜드 네임이 눈에 들어왔지만 만족스러운 상품은 없었다. 그러던 찰나 신형 벤츠를 닮은 아기 보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쇼꼴라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간판을 지나 보행기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만져봤다. 총 10가지 음악이 연주 가능하고, 내구성과 기동성이 뛰어나며 웰메이드 장인정신이 깃들어있는 그 보행기를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나의 고결한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60만원에 이르는 후덜덜한 가격은 나로 하여금 선물을 주저하게 만들었고, 돌 아이에게는 옷이 최고의 선물이라며 몇 가지 생활복과 드레스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쳐다보던 찰나 핑크색의 공주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고 그 제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드레스를 빛내줄 레깅스와 핑크빛 양말까지 갖추어진 그야말로 완벽한 한 세트였다.

가격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지만 필기왕의 사회적 영향력과 지위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희생이라 판단했기에 쿨하게 값을 치렀다. 턴 체인지로 오프는 이미 짤렸기 때문에 돌잔치 장소로 향하는 간호사에게 맡겨 아기에게 전달토록 했고, 모든 상품의 값어치를 두 배 이상 올려준다는 필기왕 친필 싸인 까지 새겨 넣었다. 모든 것은 완벽했고 사람들이 파티장에서 내 선물을 보고 기겁하며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보내는 일 외에는 더 이상 남은 준비는 없었다. 오직 감사의 인사를 들을 일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도 선물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 나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에 혹시나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병동을 떠돌며 '선물했는데 반응이 없다, 실망이다'라며 주접을 떨고 다녔다. 그나마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의 한줄기 빛은 맞은편 병동의 차지 간호사였다. 돌잔치 아기 어머니와는 직장동료이자 동급생이었던 그 간호사는 새벽 1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수화기를 집어 들고 전화를 걸었다. 곧 찾아올 본인의 돌잔치를 겨냥한 꼼수였겠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연결이 되었고, 그 간호사는 수화기 너머로 선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엎드려 절 받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절이라도 내심 받고 싶었고, 그녀의 쌩큐에 마음 속 차가운 얼음과 같은 감정들이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필기왕의 높아진 위상과 순결무구한 사회적 지위가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부디 그 아기가 그 필기왕의 선물을 받고 건강하고 예쁜 숙녀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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