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퇴원을 반복하는 재미있는 할머니가 한 사람 있다. 3년 전 파열성 뇌동맥류로 수술을 받은 뒤부터 신경외과의 단골손님이 된 그 할머니는 전신이 마비에 가까운 상태고, 하루가 멀다 하고 변비에 시달리고, 반나절 만에 혈압이 60에서 190을 왔다 갔다 하는 조금은 특별한 환자다. 의식은 명료하지만 치매 환자 이상의 confusion(혼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대부분 연결성 없이 툭툭 뱉어내는 무의미한 것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는 어디에 갔냐고 물으면 몇 일전에 저세상으로 갔다고 하기도, 또 어떤 날은 장에 갔다고 대답한다. 현재 콧줄을 통해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에 입으로 먹는 것에 대한 열망도 강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행여나 사탕이라도 드리면, 자존심 때문에 저리 치우라며 화를 내지만 입과 혀는 이미 사탕을 향해 날름거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할머니에겐 모든 음식은 단맛일 뿐이다. 쵸콜렛도 단음식이지만 3% 생리식염수(짠물)도 그저 단맛일 뿐이다. 언젠가 나무 설압자를 대주며 무슨 맛이냐 물었더니 이빨 맛이라 대답해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할머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빠른 리셋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꼬집는 시늉을 하면(실제론 꼬집지 않지만) 할머니의 입에선 어김없이 또 시작이야 혹은 또 지랄이야 라는 말들이 수도 없이 쏟아진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라뽀는 바닥사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오케이라고 할머니에게 싸인을 보내도 안오케이, 지나가는 간호사가 뚱보냐 물어도 안뚱보 등 묻는 질문에 모두 반대로 대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너진 라뽀를 원상 복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환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다음 다시 들어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치 새로운 사함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대해준다. 컴퓨터 재부팅 속도보다 더 빠른 리셋이 아닌가.

여튼 피곤함과 지루함에 찌든 요즘, 중환자실의 할머니 덕분에 하루의 스트레스가 그나마 조금씩 풀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한 번씩 혈압이 60까지 떨어질 때는 걱정스럽지만 아직은 건강한 할머니가 잘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일 또다시 할머니와 함께 만들어나갈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늦은 새벽잠을 청하며, 내일 할머니에게 던질 개드립 멘트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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