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코엑스에서 열린 의료기기 전시회에 잠시 다녀왔다.
전날 한숨도 못잔 탓에 몸이 부서져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현대 의학기술의 발전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 억지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강남으로 향했다. 다행히 의국으로 날아온 무료 티켓이 있어서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드넓은 부스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처럼 기대만큼 신비롭고 번뜩이는 아이디어 상품을 만나볼 수는 없었다. 두시간여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라고는 유덕화를 모델로 내세운 싱가폴의 498만 원짜리 안마 의자와 초음파 정도랄까.

 부스 이곳저곳을 누비던 와중 한 의료기 수입상사의 부스 앞에서 만난 한 친구 덕분에 나는 한참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청진기, 펜라이트, 신경학적 검사 장비, 수술도구 등 번쩍거리는 휘황찬란한 수많은 기구들 앞에서 눈먼 장님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하나 사고 싶어서 잔머리를 굴리며 이리저리 핑계거리를 찾던 와중에 평소 중심정맥 라인 삽입 후 기흉 발생 여부를 감별하기 위해 사용하던 청진기를 내 것으로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홍보사원에게 가장 좋은 제품을 소개해 달라 부탁했고, 판매원은 독일과 일본 그리고 3M사의 청진기 세 종류를 보여주었다. 3M이야 학창시절부터 그 명성을 익히 들어온 완성도 높은 제품이었으며, 나머지 제품들도 역사나 경쟁력 면에서 전혀 뒤쳐지지 않는 제품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점원의 끈질긴 추천과 제품 자체의 매끄러운 디자인에 감복하여 3M 청진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으로 복귀하여 2년 만에 청진기를 목에 둘러메고 사회적 지위 확인을 위해 병동 여기저기를 누비는데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껏해야 shunt 수술 환자 장음이나 간단한 폐음 정도 듣는 게 전부인 신경외과 전공의가 청진기, 그것도 cardiology를 목에 두르고 다니다니 호박에 진주 목걸이를 해준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구입 이틀째 여전히 그 청진기는 central line 삽입 후 기흉 여부 감별을 위해 듣는 용도로만 사용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싸구려보다는 잘 들린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인증사진과 함께 일기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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