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밥보다는 의국 전자렌지에 돌려먹는 라면으로 끼니를 채우고, 행여나 새벽 2시에 잠드는 날은 너무 행복한, 또한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일보다 환자의 피와 방사선 사진 검사를 보는 일이 먼저인 한없이 불쌍한 삶이지만 이마저도 익숙해지면 모두 다 진정한 내 삶이 된다. 집이 없어도,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단지 가진 것이라고는 미친 듯이 울려대는 콜 폰뿐일지라도 무상과 무념의 공허한 세계에 젖어들면 행복해지는 진정한 무소유의 삶이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닌가 싶다.

분과 특성상 1년차는 일주일에 한번, 2년차는 일주일에 두 번, 3년차는 일주일에 세 번, 4년차는 일주일에 평균 4번 정도 샤워의 기회를 갖는다고들 한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수술 방에 있다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오더 뭉치, 소견서, 진단서, 수술 동의서, 각종 처치 및 술기, 응급실 콜 등 나를 기다리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샤워는 고사하고 잠이라도 제대로 자거나 밥이라도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이 신경외과 공노비의 운명이라면 어쩌겠는가, 미친 척 따르는 수밖에.

헌데 이런 우리를 위해 한 제약회사에서 획기적인 제품을 하나 개발했다. 우연찮게 중환자실 안을 기웃거리다 발견하게 된 이 제품의 견본품은 '물 없이 사용하는 바디클렌져'라는 매혹적인 문구를 앞세워 중환자실 곳곳에 살포되어 있었다. 간호사들이 이 제품을 이용하여 물 한 방울 없이 중환자들을 케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옳거니' 턱을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 제품의 판매 공략 층을 신경외과 전공의들로 설정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몸소 그 결과를 체험코자 중환자실에서 견본품 두개를 얻어서 금주 월요일부터 일주간 실험에 돌입했다.

확실히 무샤워 이틀째인 화요일 오후쯤 조금씩 시작되던 전신 가려움증이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다. 전문 간호사들이 적선해 준 다크써클 감소용 스틱과 안면에 촉촉함을 공급해주던 미스트와의 호흡도 잘 맞았다. 신경외과 2년차의 화장대 3종 세트의 강력함은 피부 트러블을 줄이고, 퀴퀴한 냄새와 비위생적인 몰포로지도 눈에 띄게 감소시켰다. 특히 수건이나 바디클렌져 등이 없어도 충분히 샤워도 가능했다는 점은 레지던트라면 누구나 주목해야 할 괄목 할 만한 성과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떡진 머리는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 정도랄까. (물론 아침 컨퍼런스의 떡진 머리는 하느님도 해결해 주지 못할 신경외과 전공의의 영원한 숙제지만)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봤을 때, 남아있는 3,4,5 일째 상태변화가 상당히 기대되며, 이러한 훌륭한 제품을 개발해준 ㅇㅎㅋㅂㄹ 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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