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꺼져만 가는 불씨를 멍하니 바라볼 뿐 되살릴 수 없다면, 그래서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일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보다 더 슬프고 암울하고 답답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의 내가 그러했다. 저승사자의 오랏줄이 서서히 자신의 목을 조여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건만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을 손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한 할머니와 그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던 나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의식이 없었더라면 더 편했을까. 수십 번을 되뇌였다. 수술 직후부터 저하되기 시작한 혈압은 이제 60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약으로도 할머니의 혈압을 상승시킬 수 없었다. 치명적인 Septic shock(패혈증) 컨디션, 수술 당시 발생한 출혈 및 수혈로 인한 DIC(범발성 혈액응고증), Tbc Spine(결핵) 등 다양한 원인이 병발되어 발생한 할머니의 문제를 두고 내과를 포함한 각 진료과들은 결국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압은 50, 그리고 4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대사성 산증은 주사제를 퍼부었건만 도통 교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고, 그렇게 손 놓고 있던 사이에 체내 노폐물은 더욱 축적되어 결국 급성신부전까지 발생할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하지만 낮은 혈압 탓에 투석을 돌리기가 여의치 않았고, 승압제를 최고 용량까지 퍼부었지만 끝내 혈압은 오르지 않았다. 떨어지는 혈압만큼이나 할머니의 의식 상태도 점점 나빠졌고, 희미해져가는 현실의 끝자락 속에서도 할머니의 눈빛만큼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끝내 버티지 못한 심장은 점점 멈추기 시작했다. 혈압을 올리기 위해 수액을 미친 듯이 부어댔지만 퉁퉁 붓기만 할 뿐 40에서 30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 무서운 기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의식이 혼미상태로 빠지고 30여분 뒤 심박 수가 늘어지면서 CPR이 시작되었다. 끝내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그 마지막 눈빛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심장압박을 시행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50분 후 심장이 완전히 정지함과 동시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다른 때와 달리 임종의 순간까지 의식이 있었던 환자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새벽녘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조용히 병원 앞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며 할머니의 마지막 눈빛과 죽음에 대해 생각에 잠긴 채 그렇게 덧없이 또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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