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못난 녀석을 하나 떠나보냈다(퇴원의 의미). 목에 칼이 들어올지언정 나를 형님으로 부르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던, 환자보다는 동네 노는 동생의 냄새가 물씬 풍겼던 스물네 살의 그 아이는 다행히 건강한 모습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말 새벽녘 내 단잠을 깨운 그 녀석이 응급실로 왔다는 콜에 짜증을 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하고도 반이나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입원 후 2주쯤 되었을 때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이후 extubation(탈관)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흡인성 폐렴과 전신 패혈증으로 죽을 고비를 한차례 맞이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잘 견디어주었고, 드디어 오늘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 못난 녀석이었다. 여자 친구에게 실연당한 후 목을 매단 채 발견되어 응급실로 실려 왔던 그 녀석은 내원당시 혼미상태로, 회복 가능성이 불분명했다. 2m 높이에서 5~10분 남짓 매달려 있었다던 주변의 증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목에는 기다란 상처가 남아있었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겨우 가느다란 숨을 이어가는 정도였다. 대개 목을 매달고 온 환자의 예후는 두 가지,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간에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꽤 많은 수의 환자를 보았고, 대부분 첫 대면에서 풍기는 생사의 냄새가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했었다. 헌데 그 녀석에서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고, 공격적인 치료보다는 대증적인 치료로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4일간을 그렇게 누운 채로 보냈다. 5일째 되던 날 저녁 중환자실 간호사로부터 환자가 조금씩 움직인다는 노티를 받았고, 믿기 어려웠지만 확인을 위해 중환자실로 향했다. 자극에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미약하게나마 자가 호흡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날 촬영한 CT에서는 뇌부종이 상당수 감소한 소견과 함께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gyral marking(대뇌 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재원 20일째 일정한 반응 및 자극에 협응이 되는 정도까지 의식상태가 호전되었다. 21일째, 탈관 후 병동으로 나가서 치료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연하장애로 인한 흡인성 폐렴으로 패혈증에 빠져 다시금 중화자실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신부전과 함께 폐부종까지 동반되었고, 의식은 다시 혼미상태까지 저하되었다. 하지만 젊었던 그 아이는 병마를 기적같이 이겨내고 회복했다. 전반적인 컨디션이 회복됨에 따라 의식도 명료하게 돌아왔고, 간헐적으로 헛소리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병동으로 나올 수 있었다.

헌데 이 녀석이 깨자마자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나를 봤다며 자기 친구들을 아냐고 묻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필기왕?'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이야기도 들어보니 이는 분명히 외상으로 인한 confusion(혼동)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만성 축삭 손상(Diffuse Axonal Injury, DAI)이 이미 MRI를 통해 확인이 된 터라 걱정은 덜했지만, 그 뒤로부터 나만 보면 반겨대며 달라붙는 통에 이 녀석 피해 다니느라 진땀을 뺐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식이를 아냐고 미친 듯이 묻는가 하면 가본적도 없는 가평 개동에 살았던 적 있지 않냐고 우겨댔다. 때마다 저리 가서 놀라며 사탕 하나 던져주고 도망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퇴원한다니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여튼 목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손수건을 동여매고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꼭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좋은 여자 만나라는 것 외에는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다만 언젠가 새벽 병원 로비에서 그 녀석이 울면서 자기를 차버린 여자 친구가 보고 싶다는 말을 내 앞에서 꺼냈을 때 냉정하게 잊어버리라는 말 외에 더 멋진 조언을 해주지 못한 게 담당 의사로서 그리고 형으로서 아쉽고 미안할 뿐이다. 잘 가라 못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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