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브라 궁전

그라나다(Granada) 왕국의 화려했던 역사적 현장을 반나절 동안 모두 둘러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진 찍고 지나간 부분만이라도 뇌리에 정리해 보고자 지리 및 역사 공부부터 시작하였다. 새하얀 벽에 붉은색 지붕을 인 그라나다의 건물들은 회교도 지배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듯이 안달루시아 지방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무어인(Moorish)의 자취를 잔뜩 머금고 있다. 기원전 5세기 로마의 식민지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이 도시는 8세기 회교도의 수중에 들어가 800여 년간 지배를 받는다.

그라나다라는 명칭은 13세기에 가톨릭 세력과 전투에서 패한 회교도들이 이곳으로 후퇴해 건설한 "성스러운 언덕"이란 뜻에서 비롯된다. 이후 나스리드 왕조(Nasrid dynasty, 1232-1492)의 그라나다 왕국 수도로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아랍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로 군림한다. 그러나 250여 년간 지속된 이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문명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Reconquista, reconquest, 국토회복운동)가 전개되면서,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이사벨라 여왕에게 정복돼 15세기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라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도시의 남동쪽 언덕에 자리한 알람브라 궁전이다. 이 궁전은 회교, 유대교, 기독교 건축 양식이 한데 결합된 이른바 무데하르 (Mudejar)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나스르 궁전(Palacio Nazaries),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V), 알카사바(Alcazaba),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Generalife) 등 4구역으로 나눠진다. 원래는 무어인 병사들의 방어용 성채였는데 13세기 전반부터 보수 확장에 들어가 14세기 후반 유세프 1세와 무하메드 5세 치세에 이르러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카를로스 5세 궁전 (Palacio de Carlos V, Palace of Charles V)






카를로스 5세 궁전 (Palacio de Carlos V, Palace of Charles V)

이 궁전은 신성로마황제가 된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5세의 명으로 건축가 페드로 마추카(Pedro Machuca)가 1528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전위적인 양식이었다. 궁전 입구의 벽면 장식을 통해 매너리즘적 요소도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은 가로, 세로 63m의 정사각형이며, 그 안에 원형의 중정(中庭)을 배치했다.

입구를 보면 가운데 큰 문이 있고 양쪽으로 두 개의 작은 문이 있다. 이들 문 사이와 양옆으로 네 개의 부조가 있는데, 가운데 두 개는 천사의 축복을, 가장자리 두 개는 이슬람 군대를 물리치는 에스파냐 군대를 표현했다. 기둥의 양식은 1층과 2층이 다른데, 1층은 투산식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이다. 또 벽의 모양도 1층과 2층이 다른데, 1층이 타일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마감을 했다면, 2층은 콘크리트를 바른 것처럼 좀 더 인공적으로 마감했다. 현재 1층은 박물관(Hispano-Moorish Museum), 2층은 미술관(Fine Arts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입구의 건물벽과 기둥에는 왕조가 바뀔 당시의 전투 상황을 부조해 놓았다.
모두 실제 상황을 재현한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놀라운 모습을 발견한다.


 

정사각형인 건물의 겉모습과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32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인 원형마당이 펼쳐진다. 회랑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층 기둥은 도리아식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으로 되어 있다. 이 원형 공간은 또한 소리가 잘 들리도록 음향을 고려했다는데 한 가운데서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회랑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잘 들린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카를로스 5세는 이 궁전에 한 번도 살지를 못했다. 그는 정치와 경제 등에서 에스파냐를 부흥시키느라 그라나다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도 1561년 톨레도(Toledo)에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남쪽으로 내려올 일이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그라나다는 역사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도시가 되었다.



알람브라 궁전 La Alhambra - 나스르 궁전(Palacio Nazaries)







알람브라 궁전 La Alhambra - 나스르 궁전(Palacio Nazaries)

나스르 궁전은 왕이 정치를 행하던 곳으로 메수아르(Mexuar)의 방은 왕의 집무실이었다. 이 방의 벽면과 천장은 온통 아라비아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 타일과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진 정교한 석회 세공으로 장식돼 있어 그 화려함에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형상의 재현을 금기시한 아라비아 율법에 따라야 했던 장인들은 같은 시대 서방 세계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추상예술의 정점을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볼 수 있는 모습은 기독교 시대에 보수한 것이라고 한다. 왕의 사적 공간이자 왕실 여인들이 거주하던 하렘(Harem)은 124개의 정교한 장식 기둥으로 둘러싸인 사자의 중정 부근에 있다.





아라야네스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Court of the Myrtles)
Patio de la Alberca (Court of the Blessing or Court of the Pond)

알함브라 궁전의 중심은 나스리 궁전이다. 궁전은 세 개의 궁으로 이루어지는데 메수아르(Mexuar) 궁전이 처음 만들어지고, 남쪽으로 왕의 공식 집무실인 코마레스(Comares) 궁전이 만들어졌다. 코마레스 궁전의 안뜰인 아라야네스 정원은 가로 42m, 세로 22m의 직사각형으로, 가운데 연못이 있고 그 가장자리로는 대리석을 깔았다. 그리고 안뜰의 남쪽과 북쪽으로 거실을 만들어 왕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사자의 궁전 Palacio de los Lesones


무하마드 5세(1362-1391) 때 코마레스 궁전의 동쪽으로 사자의 궁전이 만들어진다. 이 궁전이 세워지면서 알함브라 궁전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코마레스에서 사자의 궁전으로 옮겨진다. 사자의 궁전에는 가운데 가로 35m, 세로 20m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이 있고, 중정 한 가운데 물을 뿜는 12마리의 사자가 있다(사진 속에선 수리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 가장자리에는 124개의 대리석주로 이루어진 회랑이 있고, 사방으로 네 개의 방이 있다. 동쪽에 왕의 방(Sala de los Reyes), 서쪽 모사라베스(Sala de los Mozarabes), 남쪽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jes), 북쪽이 두 자매(Sala de los dos Hermanas)의 방이다.

아벤세라헤스 방의 특징은 가운데 12각형 분수가 있고, 천정에는 모서리가 뾰족한 팔각형의 별이 있다. 그리고 이들 모서리 벽에는 작은 채광창이 두 개씩 모두 16개가 있어 빛이 안으로 은은하게 들어온다. 또 천정에는 5000개 정도의 벌집모양이 붙어 있어 무척이나 화려하다. 어떤 사람은 이 천정 장식을 종유석에 비유하기도 한다.



왕의 방은 사자의 궁전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그것은 방 앞쪽으로 사자의 분수가 있고, 방 뒤쪽으로 엘 파르탈(El Partal)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방은 왕이 사교도 하고 쉬기도 하던 공간이다. 넓은 로비가 앞에 있고, 그 뒤로 4각형의 방이 세 개, 작은 응접실이 두 개 있다. 18세기에는 이 방을 정의(Justice)의 방이라 부르기도 했다. 왕의 방에서 엘 파르탈로 나가다 북쪽으로 보면 다로강(Rio Darro)강 너머 알바이신(Albaicin) 언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벽에 새겨진 아랍어 문양

사신 접견실(Salon de los Embajadores)은 코마레스탑 아래 만들어져 공간으로 상당히 넓고 천정이 가장 높다. 방은 가로 세로 12m의 정사각형이며, 높이가 무려 23m나 된다. 이곳은 외부 인사의 접견실로, 술탄의 옥좌가 입구 맞은편에 있었다. 동쪽 서쪽 북쪽에는 각각 4개의 격자창이 있어 외부로부터 은은하게 빛이 들어온다. 이 방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신대륙 탐험의 임명장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파르달 정원 Jardines del Partal

파르달 정원은 란다라하 발코니 (the murador of Lindaraja)와 연해 있고 란다라하 정원도 창밖 밑으로 보인다. 벽과 창 그리고 아치도 너무 아름답고 창밖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아바이신 지역 풍광 또한 시원하고 아름답다.


알카사바  Alcazaba La Alhambra






알카사바  Alcazaba La Alhambra


알카사바는 알함브라 궁전을 지키는 요새로 안으로 들어가려면 비노문(Puerta del Vino, Wine gate)을 통과해야 한다. 이 문을 지나 알히베스 광장에 서면 요새의 성벽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표를 찍고 알카사바의 망루인 쿠보탑으로 올라간다. 이슬람 건축에서는 탑으로 올라가는 길이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알카사바는 9세기 로마시대의 성채 자리에 무어인이 쌓은 것이다. 주택지와 군사요새가 분리되어 있다. 메디나에는 옛 시장터로 400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두 개의 수로물이 있고, 목욕탕, 빵공장이 있고, 지상 2층과 지하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은 알카사바의 병영유적지인데 전성기에는 24개의 탑과 군인들 숙소, 창고, 터널에 목욕탕까지 갖추어진 곳이라 했다.









알카사바에서 가장 높은 벨라탑(Torre de la Vela)

이곳은 전망대이자 종탑으로 알함브라 궁전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 동쪽으로 가까이 나사리 궁전과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보이고, 서쪽으로 조금 멀리 시내 중심에 있는 대성당과 왕실예배당도 보인다. 그리고 남쪽으로 저 멀리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이 보이고, 북쪽으로 가까이 알바이신(Abaicin) 지구가 보인다. 전망대에는 유럽연합,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그라나다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알바이신 Albaicin

하얀 벽의 집들이 밀집해 있는 알바이신 마을은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곳으로 다로강 북쪽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라나다 왕국 시절 잘 나가던 이슬람교도들이 살던 주택지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길가에는 정원이 갖춰진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미로같이 만들어 놓은 정원을 따라 이동...








프랑스 정원 숲길


여름궁전 울창한 사이프러스(cypres) 나무들이 연피모양 또는 양주잔 모양 등으로 가꾸어진 프랑스식 정원을 지났다. 왕궁의 동쪽 멀리 위치하며 1세기 초에 마들어진 정원이다. 헤네라리페는 아랍어로 "천국의 정원" 또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헤메랄리페 정원  GENERALIFE - 아세키아 중정 (Patio de Acequia)







헤메랄리페 정원  GENERALIFE - 아세키아 중정 (Patio de Acequia)

그라나다왕 술탄의 여름 별장이라는 이곳은 궁전과는 달리 하얀 외벽이 특징이다. 「자연 그대로」를 강조하는 아랍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건축가(알라신)의 정원」이란 뜻의 헤레랄리페는 꽃과 나무 그리고 물이 건물과 절묘하게 어울려 있다. 아세키아 정원은 기다란 수로 양옆의 분수에서 뿜어져 나와 아치를 그리며 떨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일품이다.








Generalife courtyard with dead cyprus tree

담장 옆에는 커다란 고사목이 서있으니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눈물의 나무이다. 옛날 어느 신하와 후궁이 사랑에 빠져 밤이면 이 나무 아래서 몰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왕이 신하를 처형하여 이 나무에 매달았다. 이 나무 또한 이들에게 불륜의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뿌리를 잘라 고사시켰는데, 고목이 되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나스리 왕조의 하산 2세 왕에게는 왕비와 후궁 5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젊은 후궁이 근위대 장교와 몰래 통정을 하였다. 후궁은 아벤세라헤스(Abenserrajes) 가문 귀족의 딸이었는데, 왕은 용서를 해준다고 말했다. 얼마 후 왕은 헤네랄리페 별궁에서 파티를 개최하여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귀족 청년 24~30명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는 결국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근위대원을 풀어 청년들의 목을 모두 베어 분수 앞에 걸어놓았다. 그 핏물은 3일간이나 씻겨 내려가 흘러내렸다고 전해진다.










헤네랄리페(Generalife) 여름 궁전에서 바라다 보이는 나스르 궁전


알함브라 궁전 전체를 다 보고 광장으로 나올 무렵 소나기가 내렸다. 구경하랴, 설명 들으랴, 사진 찍으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것이 천천히 보고 듣고 즐겨야 하는 건데, 단체로 다니다 보니 전체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로 자위를 해 본다.

Francisco Tarrega Eixea(1852~1909) -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





알바이신 시크로몬테 언덕의 아담한 작은 극장 타블라오(Tablao)에서 플라멩코(flamenco)를 즐겼다. 나무판으로 만든 좁은 무대에서 가타와 피리 연주자(toque) 2명, 박수치고 노래하는 남자가수(cante) 2명, 그리고 플라밍코 댄서(baile) 3명이 전부였다.

기타와 피리 연주와 함께 남자 두 명이 손뼉 치며 노래를 시작한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애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곧 박자에 맞추어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여자 댄서가 등장한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음악에 맞추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비장함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알람브라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
- Francisco de Asis Tarrega Eixea (1852~1909) -  


기타음악으로서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알람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은 에스파냐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근대 연주기법의 틀을 완성한 타레가의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기타음악이 강세인 에스파냐에서 클래식 기타의 표본이라고 불릴 만큼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 곡이 만들어진 연유는 콘차 부인과의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거부당한 타레가는 상심에 빠져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다가 이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에 머물게 된다. 어느 날 창밖의 달을 보며 밤을 지세우면서 그 녀를 생각하고 작곡한 곡이「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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