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품에서 세세한 요소를 꺼내어 들춰보는 일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사진이든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의미적 구성을 어떠한 매개체를 통해 깨닫는 것은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하나의 작품에는 수많은 의미적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작품을 만들어 낸 작자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자신의 생각, 사상, 취향, 시각 등이 녹아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역사성이 함축된 시대상과 은밀할 수밖에 없는 욕망과 고발이 담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서경식씨는 미술작품을 통해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을 고발하고 설명한다.  동시에 그런 인간의 역사적 실체와 만행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한다.  말하자면 그는 작품 속에서 시대의 폭력을 읽어내며 되살아날 수 있는 폭력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홍기씨는 작품 속에서 복식의 모양, 즉 패션을 읽어낸다.  역사속의 패션을 읽어냄으로서 삶의 역사적 변천을 설명하고 현재의 삶을 투영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작품 속 패션의 역사를 읽어내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패션 속에 들어있는 시대적 취향, 인간의 욕망,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언어의 교류, 시대적 정치사회상 등을 읽어낸다.  그것은 시대적 사건과 정치적 흐름을 읽어내는 역사서와는 또 다른 인간상의 역사서와도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시대적으로 인간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표현은 옷을 통해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렇게 하게 만들었던 그 시대 사회의 정치사회 경제는 어떠했는지를 시간적 흐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역사서 말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는 미술을 매개로 한 패션의 역사책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삶의 역사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는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혀있다.  누군가의 음악, 미술, 패션, 글, 행동 등이 마냥 하나의 분야로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음악 속에는 미술적 영감이 작용했을 것이고, 패션에는 입는 사람의 사상과 사회성에 바탕을 둔 취향이 존재할 것이며, 글 속에서는 음악과 미술과 사회적 영감과 사상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고, 행동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미적, 사회적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것을 역으로 하나하나 뽑아내는 것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섬세한 면모를 돌이켜보는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인데 이 책이 조금 새롭고 흥미로웠던 느낌은 그래서였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패션은 어떤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을까?  경기가 안 좋으면 치마가 짧아진다는 식의 유행은 실재하는 경제 사회상의 반영일까?  물론 시대마다의 패션에는 계급성과 자본이 많이 느껴지긴 하는데, 점점 자본의 영향력이 거품처럼 커지는 시대의 패션은 혹여 거품처럼 불거져버린 자본의 모습을 좀 더 많이 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언제나 편함과 단순함만을 추구하며 옷을 입는 나의 패션에는 어떤 현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가 문득 돌아보게 된다.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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