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중환자 실은 환자들과 내가 환자와 의사라는 연결고리로 처음 맞닥뜨린 곳이다 무척 기억에 남는 환자가 많다. 이전에 이어 몇분의 환자를 더 이야기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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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기성(가명) 아주머님는 호흡기 내과로 입원 하신 분이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 중 가장 많은 술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호흡기 내과 환자들인데, 왜 그런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조금이라도 열이 나면 열이 나는 원인균을 찾기 위해 혈액 채취 후 배양 (Blood culture)을 해야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항생체 처방을 변경해야한다. 거기에 인공호흡기 (Ventilator)를 달고 있으면 그 Mode를 변경할 때 마다 산소농도를 확인하는 동맥혈채취(ABGA)를 해야한다.

기성 아주머님은 제일 처음에 중환자실에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격리실에서 홀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추정 진단명(Impression)은 폐렴(Pneumonia)이였는데 격리실에 있었던 것은 침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에 비해 술기를 늦게 시행하곤 했는데 처음 중환자실에 오셨을 때엔 약물로 의식이 없는 상태(Sedation)였기 때문에 술기 하는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동맥도 쾅쾅 잘 뛰어 주시고 특별히 Cooperation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Case야 말로 초보 의사에게는 완전 감사한 법. 또한 이런 경우는 내가 원하는 경우에 아무런 부담없이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률은 급상승했다.

여튼 그렇게 처음 부터 ABGA와 Culture 성공은 아주 별 부담 없이 시행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십여일이 지나고 계속 아침마다 그리고 Ventilator mode를 바꿀 때 마다 ABGA를 시행하다 보니... 손목이 남아나질 않는게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다 보면 손목의 특정한 위치에 굳은 살이 박혀 있거나 딱지가 한 곳에만 있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장기 입원 환자에게서 그런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ABGA가 잘 되는 지점이 있다보니 그 곳만 집중 공략을 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했던 곳을 또 하고...

상처가 있는 곳을 또 하고...

딱지 있는 곳을 또 찌르고...

얼마나 아프실까 안타깝다가도 여기저기 다른 곳을 해 보다가 실패를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찌르는 족족 성공하는 곳 - 바로 그 상처가 있는 그 곳을 찌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반복을 하는 것인데 ...

여튼 내 딴에는... 그런 것이 너무나 안쓰럽고 보기가 안되보였다. 그래서 기성 아주머니는 그렇게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급적 오전에 채혈한 곳은 채혈 하지 않기...

그리고 딱지 앉아 있는 곳은 피해서 하기...

이런 나름의 고려 상황을 세웠는데...

이것이 1주 그리고 2주를 반복하다 보니 팔목의 동맥 (Radial artery)이 흐르는 라인을 따라서 그리고 일부 엄한 곳을 찌른 곳까지 포함하다 보니 거의 벌집화를 만들어 놓은것이다!

나는 ABGA를 한 번에 했다고 좋아하고 있는 동안 간호사들은 내가 돌아서면 피부 보호를 하기 위해 보호 로션도 발라주고 바디로션도 바르고 하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딱지가 있으면 옆으로 피해서... 그리고 피부가 일어나면 그 옆으로 피해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아직도 어떤 방식이 환자를 위하는 건지 더 아플지 어떨지 실험을 해 볼 수가 없으니 모르겠지만 나름 환자를 위해 한다고 한 행동이었는데... ㅠㅜ

벌집 처럼 되어 버린 손목을 또 찔러야 할 때에는 참 착찹한 마음이 들었다.

여튼 기성 아주머님은 수면 유도 약물(Sedative drug)을 끊어도 계속 의식을 찾지 못하셔서 신경과에 자문의뢰(Consult)를 보기도 하는 등.. 병세가 호전이 되기 보다는 유지 - 악화를 반복되고 있었는데 내가 중환자실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 곳에 계셨다.

의식이 없으신 관계로.... 그 많은 술기를 하고, 팔을 벌집을 만들어 놓은 나를 향해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나으셔서 퇴원을 하셨는지 아니면 여전히 그 침상을 지키고 계시는지 궁금해진다. 내일엔 중환자실에 들려서 잠깐 얼굴이나 보고 올까?

 

Episode #6

경숙 아주머님께서는 기침을 주소로 내원하셨는데 중환자실로 오시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기침의 경우는 중환자실에 오는 경우가 드문데 아주머니는 기침과 고열을 동반하였고 흉부 엑스레이(CXR)에서 이상 소견도 있고 해서 여튼 뭐 중환자실 Care를 필요로 한다고 판단이 되어 입원을 하셨나 보다... (높으신 교수님의 판단을 알리 없는 인턴의 추측!)

여튼 그래도 정신은 온전 하셨던지라 다른 침대의 환자들이 투정을 부리거나 의식이 없으시거나 그런 것들을 말똥말똥 보시며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계셨다. 그래서 그러신지 내가 술기를 하러 가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의식있는 사람들 간의(?) 돈독한 정을 쌓아나갔는데 대부분은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께서는 아무래도 여기 안 계셔도 될 것 같은데... 빨리 (일반 병동으로) 올라가셔야죠..."

"아이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왜 여기 있는가 모르겠네... 의사 선생님도 참 힘드시겠네요... 몇 명을 하루에 봐야 하는거야... 어휴... (콜록 콜록)"


기침이 심하신 것을 빼고는 특별히 나에게 acting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치료 순응도 200%에다가 미관 말직 인턴 나부랭이를 극도로 존중해주는 마음에 또 감복하야!! 괜시리 더욱 신경이 쓰이고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짬이 나면 짧게나마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술기도 진행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고열이 지속 되는 것에 의심을 품은 주치의 선생님의 신종 플루 의심 이라는 추정 진단명(Imp.)이 붙기 시작하면서 일련의 검사 쭉쭉 나가 주시고
졸지에 중환자 실에서 한 켠에 마련된 격리실로 침대를 옮기셨는데...

이게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잘만 나누다가 '신종 플루' 라는 말이 돌고 그 검사를 수행하고 격리방 까지 옮겨 가시다 보니 스물스물 겁이 나는게다.

또 거기에는 비실이 같이 감기 한 번 걸리면 호되게 고생하고 나는 면역력 떨어진다라는 나의 과민한 반응이 추가되고... 의료진은 스스로를 보호할 이유가 있다... 라고 합리화 하면서 격리실에 들어갈 때는 마스크를 챙기고 길게 나누던 대화도 간략히 줄이고...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며 술기를 진행하였다.

격리실로 옮길 당시에는 경숙 아주머님 께서도 고열이 심하신데다가 식사도 거의 하시지 못하여 고통을 받으시던 때라 환경이 변화가 있거나 없거나 크게 신경을 쓰시지 못했지만 2~3일쯤 지나가자... 증상이 호전이 되다 보니 이제 다시 예전의 겉은 멀쩡한 상태로 돌아 오셨다.
 
이전에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개방된 공간이다 보니 간호사들과 이야기도 하시고, 때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격리실이라는 공간 안에 있으니 사방을 둘러봐도 홀로 그 방에 갇혀서 격리실을 지키고 있으신 건데 의료진은 나름대로 최소한의 접촉만 하다 보니 무척 외로워 보였다.

나 또한 가급적 격리실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이었고 그 앞을 지나갈 때 마다 외롭고 지루해 하시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경숙 아주머님의 모습에 때로 죄스러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저 그 시선을 피하며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다닐 따름이었다.

아침에 ABGA를 하기 위해 들어가면 어느 순간 일어나셔서는

"선생님은 언제 주무세요? 진짜 참 피곤하시겠어요..."

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시는데... 나는 마스크를 뒤에 숨어서

"정말 그래 보여요... 아 오늘은 잠을 너무 못자서 피곤하네요..."

라는 사무적인 짧은 말과 함께 채혈을 하자마자 방 밖으로 황급히 나오는 것이 반복이 되었다.

그렇게 수 일간의 격리실 생활이 지나간 어느 날도 아침 동맥혈 채혈(Routine ABGA)을 위해 격리실에 들어가는데 격리 해제 표시가 되어 있기에... 의아한 감이 들긴했으나 역시나 마스크를 해야지 안전하지란 생각이 든 찰라 경자 아주머님 께서 먼저 말을 하셨다...

"선생님~ 저 신종 플루 아니래요... 다행이죠? 이제 가족들 면회 와도 부담 없이 대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웃어보이시는데...  참 나도 그 말을 듣자마자 '나 또한 그렇다면 신종플루 걸렸을 위험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지만... 여튼 그 말을 듣자 마자 서로 서로 마스크도 벗고... 나름 신종 플루 아닌 기념...  마스크 벗고 대화해도 괜찮은 기념으로다 격리실에 들어 오신 이래 가장 오랜 시간 담소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미 증상도 회복이 되셨겠다, 신종 플루도 아니었겠다, 경숙 아주머니 께서는 신종 플루 아님이 확진이 되자 마자 일반 병동으로 올라갔는데...  며칠이 지나자 그나마 의식이 명료하시면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경자 아주머니가 안 계시는게 쓸쓸한 감도 들었다.

뭐 바쁜 나날에 그러한 기억들도 어느새 가물가물해 지기는 했다. 그러다가 한 날은 병동 인턴이 당직 나가는 동안 삐삐를 맡아 들고 병동일을 하고 있던 때 였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한 환자분이 인사를 하시는게다.

'누구시지?' 하며 가까이서 보니 다름아닌 경자 아주머니 셨다.

"선생님... 저 오늘 퇴원합니다... 그 때는 급하게 (일반병실로) 올라오느라 인사도 못 했는데... 그래도 갈 때가 되니까 또 이렇게 얼굴이 보이시네요. 좋은 의사 선생님 되실겁니다...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히시며 인사를 하시는게 아닌가.

우선 난 한 것도 없는데 인사를 들으니 송구스럽기도 하고 또 모든 것의 처음은 기억에 남으니 그런 처음 듣는 인사에 뿌듯한 마음도 들고 여튼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순간 뒤섞이다 보니 뭐라 말을 하지는 못하고... 목소리만 고양되어...

"아~! 그러세요... 잘 되셨네요... 빨리 나으셔서 잘 되셨네요..."

"잘 되셨네요..."

만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완치되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나가는 환자를 보는 것 만큼 의사에게 뿌듯한 순간이 있을까? 중환자실에서의 짧은 기억이었지만 처음의 아파하시던 경자 아주머님의 모습과 밝게 활짝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나가시던 경자 아주머님의 모습이 겹쳐서 생각나는 때면... 참 이 의사라는 직업...  이런 기분 때문에 하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pisode #7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술기란 고통이건만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나에게 큰 교훈을 주신 분이 있었다. 다름아닌 무진(가명) 할아버님이셨는데,
올해 연세가 94세... 연세가 있으시니 만큼 다양한 질병력과 각종 재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신 병력(Hx)를 갖고 있으신 분이었으니... 뭐 다양한 과의 질병을 갖고 있는 분이 치료를 받기에는 중환자실 만큼 좋은 곳이 없었으리라.

여튼 대장암 수술을 받으시고 거의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는(Bedridden) 상태로 재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던 무교 할아버님 또한 폐렴(Pnemonia)으로 인해 중환자실 치료(ICU Care)를 받게 되었는데 역시나 이런 경우는 산소포화도(Saturation)가 유지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호흡기 내과로 전원되시고 아침마다 불가피 하게 동맥혈 채혈(ABGA)로 가냘픈 팔을 통해 피를 뽑혀야 했다.

항상 술기에 앞서서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제가 채혈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거 좀 혈관이 깊이 있어서 많이 아프실 수도 있고 한 번에 안 될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하면... 할아버지 께서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알겠소..."

라는 짧은 말과 함께 오랜 병상 생활 동안 야위어서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눈을 꾹 감으시고는팔을 내밀었다. 이제까지의 에피소드를 잠깐이라도 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런 분들은 더욱 마음이 짠하고 어떻게든 잘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강한 법...

그렇게 무진 할아버님께서는 주삿 바늘을 찌를 때 잠깐 찡그렸을 뿐 끝나는 동안 팔은 미동도 하지 않으시고 다 되었다는 말과 함께 감고 있으시던 눈을 그제야 뜨시고 간단히 눈을 마주치신다...

'Eye contact'

그냥 그렇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말 보다는 더 강한 정이 오고 가는 것.

무진 할아버님도 또한 어느 순간 부터는 인공호흡기(Ventilator)를 달고 생활하시게 되었는데 산소포화도 (O2 saturation) 수치가 정상으로 유지가 되지 않아 장기간 호흡기 치료를 해야한다는 판단에 기관절개(tracheostomy)를 시행하였고 이제는 말씀조차 하시기 힘들게 되었다.

호흡기(Ventilator)도 달았고... 이미 전신 상태(General condition)는 나빠질 때로 나빠지셔서 거의 기력이 없으신 상태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고 주무시다 시피 하시며 있으셨는데.. 여튼 상태가 상태이니 만큼 나 또한 동맥혈 채혈(ABGA)을 시행할 때가 훨씬 늘어 났다.

때로는 혈압 유지가 되지 않아서 (BP가 흔들려서...) 동멱 (artery)을 잘 찾지 못해 여러번 술기를 수행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라도 내가 찾아가...

"할아버님... 또 한 번 검사를 하셔야 겠어요..."

라고 말을 하면...

눈을 조금이라도 뜨시고는 이제는 당신이 말을 못 하시니 손을 내미신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하시는 모습... 말을 하지 않아도...  이 분이 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당신의 증손자 뻘 밖에 되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뭉클 하더라...

상대적으로 나를 괴롭(?) 히던 다른 환자들과 확연히 대비를 하여... 속으로는 '젠틀맨 할아버지' 라고 벌명도 지어드리고... 뭐 하나 해드릴 것은 없지만... 술기라도 한 번에 해 내자...  그리고 완쾌를 빌며...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한 때는 거의 돌아가시는 줄 알고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들과 주치의들이 걱정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악수조차 청하지 않으시고... 내가 가도 술기 조차 받으시지 않으려는 모습에 얼마나 아프셨으면 이러실까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늘은 돕는자를 돕는 건지... 그 고비의 순간을 잘 넘기셨고... 어느 순간 T-tube도 제거를 하고 일반 병실로 올라가셨다.

아마 지금도 어디 선가 재활 치료를 하시고 계실 테지만 정말 그 분의 인품은... 본받고 싶었다...  나라면 당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비록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나... 당신을 아프게 하는 새파랗게 어린 의사에게...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지금의 대답은 '아니다...' 라는 것....

 

Episode #8

이제까지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호흡기 내과 환자들과 관련된 일이었다면 이번에는 살짝 응급실로 화제를 전환해 봐야 겠다. 우리 병원의 경우 내과는 총 8명. 그 중 ICU part를 맡고 있는 나의 경우 응급실에서 오는 내과 콜 까지 다 받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동선도 길고 '응급실 인턴(ER intern)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왜 내가 거기까지 가야하는가?' 에 대한 원초적인 불만 때문에 ER에서 오는 콜 = 무시하고 싶은 콜 의 경우가 되기 마련이다.

여튼 그러거나 말거나...

4주간의 ICU 그리고 ER 파트를 도는 동안 밤의 콜의 대부분은 응급실(ER)에서 왔는데 뭐... 역시나 이 곳에서의 호출 또한 혈액 배양 (Blood culture), 위장관 튜브 삽입 (L-tube), 그리고 약을 먹고 자해를 하시는 분들의 응급 처치인 위세척(Lavage) 정도가 주된 일이겠다.

그 날은 비가 저녁이 되자마자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때였다. 대부분의 경우 응급실은 유비 무환이라는 말 처럼 비가 오면 환자가 없기 마련이고 나도 그 날 따라 ICU의 환자들도 많이 퇴원을 하여 조용한 상태였다.

나름 일찌감치 일을 끝내고 룰루랄라 여유를 즐기다가 이제 간호사들과 어느정도 안면도 있겠다 ICU call 정도는 경중을 가려가며 좀 몰아서 가고.. 하다 보니 나름 짬이 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런 콜 또한 밤이 깊어지자 거의 없어졌던 것.

그래서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12시에 응급실에서 콜이 왔다. 마침 잠이 딱 들려는 찰나에 콜을 받으면 이것은 아니 자는 것만 못하다는 느낌에 더욱 irritable 하기 마련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호출은 매정히 나의 발을 ER로 이끌고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다른 날 저녁에 비해 텅 빈 ER을 보며..

'아니... 이리 여유로운 상태에 내가 왜?!' 라고 속으로 나의 불운을 탓하며...

"내과 인턴 호출이요~"

를 외치자 간호사가 장갑을 쥐어주고 TC (독성학) 환자분이라고 알려준다.

'아이고야, 또 왜 약을 드셨을까?'

간단히라도 내력(Hx)을 들어보면 뭐 이유야 많겠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임무는 Lavage을 해서 위를 세척하는 것이 우선. 특별히 제조된 kit를 조립하고 환자 분의 입을 벌리고 튜브 (tube)를 꽂고 이제 크린조를 부어 위 내부를 세척해 내기 시작했다. 환자 분이야 반항이 있거나 없거나... 음식물이 나오거나 말거나... 나의 임무 완수를 향해... 달리다 보니... 예정된 10L를 넘어 15L까지 세척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니 환자분이 슬슬 정신(mental)이 깨어나신다...

이쯤 하고 나면 나머지 일은 주치의 선생님께 넘겨두고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다시 침실로 컴백...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쯤 했다면 뭐... 그냥 일상적인 것이니까 그러려니 했겠다만...

두번째 콜은 2시에...

세번째 콜은 3시에...

네번째 콜은 4시에...


응급실에서 한시간 간격으로 음독 (TC) 환자들이 와 주시고...  수면제를 술과 함께 드셨다... 농약을 마셨다... 신경 안정제를 한움큼 집어 드셨다 등등... 이런 저런 각자 할 말도 많은 사연들이 쭉쭉 나와 주신다...

이제는 그러한 사연 보다... 나의 잠을 방해 받은데에... 우선 날씨를 탓하고... (이 우중충한 날씨는 대체 뭐냐 ㅠㅠ) 환타 주치의 쌤을 탓하고... 그리고 그런 그릇된 선택을 한 환자를 탓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환자가 오면 Lavage를 해야 하는 통에... 이미 팔 근육은 과장 10배 보태서 터질 지경이고... (10L씩 짜다 보니 손도 아프고 ㅠㅠ) 그리고 낮의 여유로운 시간은 노느라 다 써버린터라... 슬슬 깨 있는 시간이 지속 될 수록 모자란 잠 때문에 이미 눈에 핏발은 서고... 정신은 축축 쳐져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오선생, 오늘 저녁에 다시 봐야지~"

라고 놀려대던 ER Night turn이... 세번째 가고 네번째 가니까...

"아 이노무 자슥 진짜 불쌍해 죽겠네... 잠은 자나?"

라고 혀를 차며 안쓰러워 하고... 애꿎게 그 날 따라 TC 환자를 담당하여 나와 함께 Lavage 만 줄창한 간호사는...

"선생님... 저 눈물 나려 그래요..."

를 호소해 주시고...
 

그럴 때 마다 호출 되어 내려오시는... 정신과 1년차 선생님과도 애잔한 눈빛을 교환하는 등... 역대 이런 때가 없었다며... 그 일을 겪게된 당사자들은 모두 다들 슬슬 지쳐 가더라... 물론 환자분들도 어떤 사정이 있었을게고... 나야 그냥 Lavage 슥슥하고 가면 되지만...

그것을 Care하느라 계속 남아 order 냈을 내과 주치의 선생님은 나보다도 더욱 힘드셨으리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열씨미 콜 하시는 주치의 선생님이 야속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인턴에게 정상적인 사고를 기대하지는 마세요 ㅠㅠ)

그렇게 대충 일을 마치고 나니 어느 순간 5시. 그냥 아침 Routine job을 해치워야 겠다 싶어서 ICU로 가서 반쯤은 눈을 감은채 손을 움직여... 아침에 해야할 ABGA를 해치운 후 스르륵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 동안 콜은 몇 개 쌓여 버렸지만... 뭐... 졸음 앞에 무너진 나라는 인간의 한계라고 해두자...

그렇게 나의 중환자실 인턴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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