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국가...

다문화국가...

오랫동안 '순수 혈통', '단일 민족'을 강조해 온 한국에서는 여전히 저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기존의 통념으로는 여전히 동의를 구하기가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러한 것들이 '주제어'로 기사화 되고, 이슈화 되고 하는 현실 자체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있고 또 그런 외국인과 결혼을 하여 소위 말하는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빈도도 많아지고 있으며 통계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외국인 수만 87만명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인지(?) 하고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도 사실.

'미수다' 같은 방송을 제외한다면 우리의 눈에 띄는 외국인은 외국인 영어 선생님, 이태원 or 홍대 등에서 술을 즐기는 벽안의 외국인, 주말에 때때로 무리지어 보이는 외국인들 정도가 우리 일상에서 보는 외국 사람들테니까.

파견 근무를 하는 2주 동안 나는 외국을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을 만났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소위 말하는 공업단지 - 대부분은 제조업일 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나의 기존의 시각은 '부정적'이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뭐 하나 해를 입힌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파견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냥 왠지 불이 꺼진 공단 지역에 검은 피부를 가진 외국인들이 어울려 다니는 것 만으로도 몸이 움찔움찔 했으니 말이다. 덩치가 산만한 나도 이럴 텐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그 모든 것들이 그릇된 선입관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참 고치기는 쉽지 않다. 그런 탓인지 공단 지역의 밤은 상당히 적막하고 인적이 드물다.  

아프든 혹은 검진을 받기 위해서든 진료를 받기 위해 그들이 내 앞에 앉아 있으면 대부분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제3세계에서 온 사람인지라 건강 검진을 받으러 왔던지 진료를 받으러 왔던지 필수적으로 손과 발을 이용해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 검진의 의사 문진 같은 경우 대부분은 형식적으로 흘러가기 마련.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대답도 거의 동일하다.

"아픈데 없어요? 먹는 약 없어요?" (약 먹는 시늉을 한다...)
"약?! 약 안 먹어요! 안 아파요!" (절대 200% 반말)

아프다고 말을 할 수도 있을텐데. 내가 2주동안 건강 검진의 문진을 진행하는 동안 만났던 무수한 외국인은 아프냐고 물어보는 말에 하나같이 크게 펄쩍 뛰며 안 아프다고 이구동성으로 말 하는 사람들.

조금은 확대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그러한 반응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는 그런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권리 등에 대해서 논의가 되어가고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조하고 도와주지만 여전히 작은 목소리, 작은 힘에 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이방인, 나아가 사회적 약자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픔이 있든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처하든 간에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서글픔이 들기도 했다.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 하나. 공단 내에 있는 병원이다보니 외상 환자가 많이 오기 마련이다. 여기서 외상환자는 경하다면 찢어지는 상처에서 부터 심하다면 절단, 골절 등등 수술을 요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환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기계에 손이 따라들어가는 바람에 손이 거의 절단이 된 경우였다. 이런 경우 파견이 나간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 하여 수지접합이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이송을 하기위해 간단한 처치를 하고, 응급차를 부르는 시간 동안 이 환자는 무한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나아서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었다.

아프면 아프다 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텐데 그러한 고통의 순간을 넘어서서 자신이 가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나의 사고로는 당시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일 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지 않은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모르고 있는 건가?'

하는 마음 속의 생각이 더 컸다...

어떻게 보면 한국...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직장이... (어느 이에게든 다 그렇겠지만) 그들에게는 꿈이고, 삶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와서 그 꿈을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문제보다 삶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러한 것이 어떠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인지 그 근원을 정확히 찾을 수는 없겠지만 3D 업종... 때로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제조업 현장에서 위험에 더욱 노출되기 쉬운 사업장의 일선에서 일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일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씁쓸했다.

그렇게 어떠한 사고가 나게 되어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떤 누구도... 심지어 우리 사회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직장을 잃고... 어떠한 일도 하지 못하게 되어 꿈을 빼앗긴 채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는 현실이...

'우리 나라가 생각하는 그들은 용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 보다는 더더욱 열악한 사회적 보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너무나 비약일까?

그들이 있기에 열악한 우리나라 제조업... 아무도 잘 하지 않으려는 각종 분야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기에... 그런 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더 크게 나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한 번 쯤 말해보고 싶다...

"당신의, 아니 우리의 친구들은 안녕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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