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한 대학병원 1년차 전공의 7명은 내과전공의 지원 미달로 인해 과도한 업무가 지속되자 근본적인 수련환경 개선 대책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병원이 호스피탈리스트 고용을 약속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이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여러 대학병원에서 반복되고 있다.

내과전공의 지원율은 2010년 142.7%를 정점으로 2012년 134.5%, 2014년 109.6%로 서서히 하향곡선을 보이다가, 2015년도에는 92.2%의 지원율을 보여 처음으로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병원마다 지원율에 편차가 많아 지원자 ‘0명’인 대학병원도 적지 않았다.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진료과들의 전철을 내과도 밟아 가고 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와 같이 비급여 진료가 주를 이루는 진료과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가이하의 수가로 구성된 필수의료행위를 주로 하는 내과나 외과의 경우 의료정책의 기본 틀에 대한 개선없이는 인력수급문제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전공의가 일하는 대형병원들은 최근 입원실을 계속 늘리고 있으나, 전공의 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 결국 과도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사직하는 전공의가 생기고, 남은 전공의들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야간 당직은 육체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의료분쟁에 대한 위험부담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를 대면 진료하는 부담이 적고, 야간 당직의 책임이 크지 않은 진료과로 전공의들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1. 미국의 교훈
미국도 20-30년 전 현재의 한국 의료계와 유사한 문제를 경험하였다. 전공의들의 업무량 증가로 안전사고와 의료분쟁이 증가하자 전공의들은 과도한 근무시간을 줄여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환자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공의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되어, 1989년 뉴욕 주에서 전공의 주당 80시간 근무시간 제한을 규정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이후 이 조치는 확산되었고, 2003년 미국 전역의 병원에서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가 의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의료분쟁의 배상액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치솟자, 전공의보다 전문의를 중심으로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병원경영진들도 인식하게 되었다. 실제로 병실에 상주하면서 입원환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전담하는 전문의를 고용하자, 재원일수가 줄어 병상회전율이 증가하고 의료분쟁도 현저히 감소하여, 호스피탈리스트 고용이 병원재정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그 결과 4만 명 이상의 내과전문의가 호스피탈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성공은 캐나다로 전파되었다. 캐나다는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통제하는 방식의 의료제도를 운영하여 미국과 전혀 다른 상황임에도, 의료인력 관리측면에서 제도를 받아들여 지금은 100개 이상의 병원에서 호스피탈리스트가 일하고 있다. 영국도 acute medicine이라는 비슷한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 한국의 과제
우리나라도 2010년 한 대학병원에서 과다한 업무에 지친 전공의가 밤 10시경에 환자를 깨워 정맥주사로 투여해야할 빈크리스틴 항암제를 척수강 내로 투입하여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환자안전법이 2014년12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사회가 환자안전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법적으로 적극적인 개입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공의들도 수련시간을 주 80시간(교육시간 포함 88시간) 이하로 제한하고 당직은 주 3일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수련환경 개선안의 실질적인 시행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내과계는 전공의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여서 특단의 대책 없이는 내과진료업무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호스피탈리스트가 위기에 처한 한국의 내과를 구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으나,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1) 7일-24시간 전문의가 진료하는 제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환자-의사관계가 한번 형성되면 외래이든 입원상태이든 의료진은 동일한 것이 우리의 의료관행이다. 이런 방식이 장점도 있으나, 단점도 많다. 해당 교수가 외래진료나 시술이 있는 날에는 병실에 회진을 가기 어렵기 때문에, 입원환자의 의사결정이 지연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야간이나 주말 당직 중에 발생한다. 현재 대형병원 전문의는 월-금요일 정규시간에만 근무하고 있어 7일-24시간 이루어져야 하는 입원환자진료에 전문의는 1/3 정도 관여한다. 나머지 2/3이상의 시간대에는 피교육자인 전공의가 당직 형태로 진료를 책임지고 있다. 물론 당직 중 중요한 의사결정은 상급자에게 보고하여 지시를 받기도 하나, 새벽 2시에 교수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전공의는 거의 없다.


환자안전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전문의가 7일-24시간 입원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진료제도를 변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평소 외래에서 진료해오던 분과전문의가 입원환자도 ‘내 환자’이니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야간, 주말 진료는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환자가 입원하면 입원전담 전문의가 책임을 지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면서, 필요한 사안은 외래 진료의사와 협진하여 처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2) 의사들의 업무가 환자중심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그동안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야간이나 주말당직은 1-2년차 전공의의 몫이었고, 3-4년차도 당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더욱이 전문의를 취득한 이후에는 당직은 하지 않는 것이 관습화되었다. 그러나 환자안전을 위해서는 전문의중 일부는 야간에도 병실에 상주하면서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많은 인력이 아닐지라도 전공의의 의학적 결정을 감독하고 중요한 의료행위는 직접 관장하는 전문의가 없으면 제도개선은 불가능하다.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복합적인 질환을 가지고 내원하는 환자들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과전문의가 전임의 과정을 거쳐 분과전문의를 취득하고, 각자 관심 있는 질환중심으로만 진료를 하고 있어서 환자의 많은 문제들을 종합하여 치료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전문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복합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내과 환자의 경우, 여러 분과전문의가 분야별로 진료하다보니 의학적 결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 미국도 현재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으나, 지난 10여년간 종합병원이 분과전문의보다는 환자 입장에서 다양한 질병을 통합적으로 진료하는 호스피탈리스트 중심으로 고용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주요대학병원 내과 교수 중 호스피탈리스트 비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다.

내과 의료진의 인력구성뿐만 아니라, 병동도 재조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학병원의 내과병동이 분과단위로 구분된 병원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대학병원 내과병동은 general medicine unit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 문제는 진료뿐만 아니라, 전공의 및 의과대학 학생에 대한 general internal medicine교육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재조정이 필요하다.


3)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되어야한다
호스피탈리스트는 전공의의 응급실 당직을 대신하는 당직 전문의가 아니다. 호스피탈리스트라는 말 그대로 병원에 24시간 상주하며 입원 환자를 돌보는 내과 전문의로 진료 뿐 아니라 전공의 및 학생 교육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5인1조로 주간, 야간, 휴식시간을 균형 있게 활용할 수 있게 보장되어야 하고, 근무하는 병원에서 진료, 교육, 연구 등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근무조건이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몇몇 병원이 호스피탈리스트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내과전공의들의 파업사태를 종료시켰다. 그러나 최근 해당병원의 채용공고문을 살펴보면, 외형상으로는 호스피탈리스트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당직의사 (야간, 혹은 주간)를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응급의학전문의를 호스피탈리스트로 선발했다고 발표한 병원의 경우 응급실 당직의사를 고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필수의료서비스가 환자들에게 안전하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입원 환자 진료도 전공의 중심에서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되어야한다. 병원이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할 수 있게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의 저수가정책도 개선되어야하겠으나, 무엇보다 대형병원들의 내부개혁을 위한 용단이 필요하다.


작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허 대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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