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방암을 처음으로 진단받은 환자와 면담할 때
남편이 있는 분들은 가능하면 남편도 함께 대동하시도록 한다.
환자와 남편을 앞에 두고
병기, 예후, 치료방침, 치료 시 주의사항을 설명한 다음
남편에게 당부하는 말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시작할 때는 다들 잘 해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멀쩡히 잘 치료받고 견디는 아내를 보며 슬슬 마음도 안심되고 처음의 충격도 가시기 때문에
도와주고 보살펴주려는 마음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환자들은 치료를 마치고 더 힘들다.

재발의 위험성에 대하 공포심이 제일 큰 부담이고
몸이 완전히 정상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컸는데 상당히 오랫동안 후유증에 고생하기 때문도 있고
치료 후에 폐경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매한 폐경 후 증상들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불편감도 크고
부부관계가 위축되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기에 팔 힘도 떨어지고 자꾸 통증이 찾아온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는 우울감도 있고
환자는 이제 더 이상 환자가 아니지만
이래저래 새로운 상황에서 역할정립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적 요인들이 앞으로 닥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남편이 충분히 이해해주고
집안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심리적으로도 충분히 지지해 달라고 부탁드린다.
지금 당장보다도 앞으로 먼 훗날까지.

남편 분들이 외래에 함께 와 주시고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메일을 보내는 걸 보면
이런 내 걱정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암이라는 인생일대의 큰 위기가 그들에게 기회가 되어 더 좋은 앞날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그래도 당부 드린다.

지금 말고 더 먼 미래까지
지금처럼 처음처럼 계속 잘 해달라고.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마시라고.
배우자가 있는 경우
가족의 후원이 있는 경우
환자들의 삶의 질과 예후가 좋다는 논문들이 많다.
당연하다.

우리나라 유방암의 특징상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내 나이또래, 나보다 약간 나이가 더 많은 환자들이 많다.
남편이 왜 남편이겠냐고, '내'편이 아니고 '남'편이니까 남편이라고.
남편한테 뭔가를 기대하지 말고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라고,
씩씩하게 치료받으시라고 말씀드리면
열에 아홉의 환자들은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웃으신다. 그렇게 웃으면서 치료를 시작한다.

내가 스스로, 내가 내 몸을 챙기며 사는 게 우리의 운명이겠지만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준다면 훨씬 씩씩하게 잘 치료할 수 있겠지.
남편이 없는 경우는 자식들을 같이 부른다.
이 기회에 평생 효도를 하시라고.
치료는 엄마 혼자 받는 게 아니고 가족이 같이 받는 거라고.

가족이 주는 사랑의 힘.
그것이 우리 환자들에게 항암제보다 더 중요한 회복의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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