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개인사적으로 많은 일이 몰아닥쳐
자신의 몸과 건강을 챙겨볼 시간이 없으셨나보다.
체중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너무 없어서 종양내과도 아닌 내분비내과에 갔다가
심각한 폐전이, 뼈전이가 의심되며 전이를 일으킨 원발병소를 찾아야 하는 시점에 우리병원으로 오셨다.

외부병원에서 기본 CT를 흉부, 복부 찍으신 상태이다. 보균자였고, CT상 간의 음영이 정상이 아니었으며 간의 크기가 매우 컸다. 간암에 특이적인 종양표지자 검사를 해보았더니 우리병원 최대치를 넘어선다. CT 소견과 종양표지자 검사로 간암을 진단할 수 있었다. 조직검사를 하지 않아도.

'눈감고 앞으로 나란히' 해보았다. 간성혼수도 나타나고 있다. 간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 오실 때부터 산소를 6리터 이상 하고 있었고
숨이 차고 기침에 나서 잘 눕지 못하였다.
검사조차 진행하기 어려운 상태로 오신 것이다. 치료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이런 환자는 항암치료를 하면 금방 돌아가시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아니 왜 이제야 병원에 오셨나'고 물어볼 컨디션조차 안되었다.
시시각각으로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환자가 힘들어한다.
병원에 오신 첫날밤, 나는 나와 전혀 유대감도 없고 안면도 없는 환자 보호자에게 아직 아무런 검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명치료 중단의 의미를 설명해야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환자의 아버님이 2달 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환자는 아직 본인이 암인지에 대해 정식으로 고지를 받지도 못했다.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든지 알지도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환자의 어머니도 아들이 암인지 모르신다고 한다. 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암이라는 말만 들어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산소를 풀 마스크로 하고 있는 환자에게
간암이 진단되었고, 치료가능성은 없다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필요할까.
나는 환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로서 다른 말도 할 수 없었다.
숨 많이 차시죠? 너무 힘드니까 좀 주무실 수 있게 약을 쓸게요. 손발이 많이 부었네요.
이런 하나마나한 말만 반복한다.

회진을 가니 심장박동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 그 자리에서 맥박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임종을 선언하였다.
가족들은 돌아가신 환자를 붙들고 '미안하다'고 하며 통곡하신다. 미안하다...
서로 간에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은 하고 돌아가셨어야 했는데
환자는 자신의 병이 뭔지도 모르고 숨만 차하다가 돌아가셨다. 회진을 같이 도는 레지던트 1년차의 눈시울도 벌게진다.

암은 이렇게 급격하게 나빠지고 돌아가시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에게 시간을 준다. 죽음을 준비할...
준비하지 못한 죽음, 서로에게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죽음은
죽은 분도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가족도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다.
열심히 살았고 후회도 남지만 그래도 내 인생 잘 살았다고,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잘 죽어야 한다. 준비된 죽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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