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
유비무환.

그리고 비 개고 나면 환자가 많이 온다.
우후죽순.

의사들끼리는 그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마음속으로 오늘 한나절은 좀 편하게 지나가겠구나... 알아차리고
생리시계가 알아서 반응한다.

비가 왕창 온 다음날, 오후 외래가 있었는데
한분의 환자도 빠짐없이 모두 외래에 오셨다.
그리고 몇 분 더 오셨다.

다들 묵묵히 항암치료도 받고
항암치료 후 백혈구 수치 확인받고 가고
영양제도 맞고 가고
검사 결과도 듣고 가셨다.
토해서 힘드신 분은 항구토제 주사도 맞고 수액도 맞으셨다.
늘 그렇듯이...

길이 통제되었다는 부근에 사시는 분들께 여쭤본다.

"이 비를 뚫고, 길도 막혀있다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새벽같이 출발해서 막혀있는 곳을 돌아 돌아 왔죠."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 노력하시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최선을 다해 치료받으시려고
병원 시간표에 일정을 맞추시는구나...

암환자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해야 한다고,
그래서 새벽같이 자동차 운전해서 출장가려고 서울을 벗어났는데
원무과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방 났으니 입원하시라고.
득달같이 핸들 꺾어 병원으로 오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병원 말 잘 들어야 하는 암환자라도,
입원 같은 일정은 전날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야 나도 먹고 사는 거 아니냐고 환자분이 툴툴 거리신다. 할 말이 없다.

치료도 치료고
생활도 생활이다.
아직은 움직일 힘 있으니
치료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
이 팍팍한 병원 스케줄에 맞춰 외래에 오신 환자분들이 짠하고도 존경스럽다.
그러한 마음을 잊지 않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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