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를 예습하다가
외래 간호사가 '진료메모'칸-이 환자가 왜 오는지를 간략하게 적어놓는 칸-을 보니
전원 차트복사 라고 쓰여있는 환자가 있었다.

삼중음성유방암이시다. 수술한지 2년이 채 안되서 재발이 되었다.
재발 후
항암치료를 4번 했는데 간이 조금 나빠져서 약을 바꾸었다.
항암치료를 3번 했는데 또 간이 더 나빠져서 약을 바꾸었다.
그리고 또 약을 바꾸어서 치료했는데 2번만에 또 나빠졌다.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해서
다른 유방암에 비해 약제선택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재발 후 첫 약제반응이 좋지 않은 삼중음성유방암은 다른 약으로 바꾸어 써도 잘 듣지 않는다.
호르몬 양성 환자는 두가지 약제가 아닌 한가지 약제로 치료해도 효과가 좋고,
때론 먹는 항호르몬 치료만으로도 몇년씩 안정적으로 병이 유지되는 것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타입이다.
HER2 양성 유방암도 공격적이지만
허셉틴이나 타이커브가 개발된 이후 드라마틱하게 약제반응이 좋은 환자들이 생기고 오랜 기간 동안 이들 표적치료제로 치료하면서 잘 지내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아직 표적이 없다. 오직 독성이 강한 항암제만이 대안이다.
그런 항암제도 단독요법으로는 거의 효과가 없다.
병용요법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독성도 강한데, 치료 반응율도 낮다.
내 수첩에 반응이 좋은 환자, 반응이 나쁜 환자를 구분해서 적어둔다.
이 환자는 나를 만나 치료한 이후 한번도 좋아진 적이 없다.
전체적인 몸 상태가 그만그만 한 것에 비해 병은 계속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차트 정리를 좀더 꼼꼼하게 한다.
내일 오셔서 차트를 복사해 가실 것 같다.
오는 환자 막지 않고
가는 환자 잡지 않는게 진료의 원칙.
환자에게 섭섭하지는 않다. 미안할 뿐이다.
좋아지는 그 한 번의 경험을 주지 못하다니 의사로서 착찹하다.

외래 전에 미리 환자 리뷰를 하면서
내 나름으로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유방암 진료를 전문으로 하시는 다른 병원 선생님들과 미리 통화하여 상의도 해본다.
이런 유형의 암이
아마도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
아직까지 정복되지 않는 치료의 영역이겠지.
환자는 내가 실망하고 속상한 것보다 백만배 더 실망하고 있겠지?
항상 사이좋게 남편과 같이 오는 환자. 그들에게 미안하다.
약을 바꿉시다.
병이 나빠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는거 참 힘들다.
그런 말을 여러번 해야 하는 외래를 겪고 나면
나는 왜 이렇게 치료를 못하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부디 좋아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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