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재발한 유방암.
오른쪽 폐 조금하고, 뼈에 여기저기 재발했다.

나하고는 처음 만났다.
이전 치료기록을 점검하였다.
재발 직후 했던 6번의 항암치료는 반응은 좋았지만
독성이 심해 항암제를 계속 쓰기가 어려워서 호르몬제로 바꿔서 유지한지 6개월.
오른쪽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입원하였다.
원래 병이 있던 자리인데, 이번에 찍은 뼈사진 상 조영제 섭취 정도가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암이 나빠졌다고 보지 않는다.
다른 임상적인 상황과 비교해야 한다.
통증이 있는 부위 MRI를 찍었다.

뼈전이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osteolytic vs osteoblastic 이렇게 구분된다.
osteolytic은 골용해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암세포 때문에 뼈 성문이 녹아버려서 뼈가 약해지고 골절도 생기기가 쉽다.
osteoblastic은 골형성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암세포가 있기는 해도 뭔가 세포들이 병변 주위에 모여서 골용해성에 비해 골절도 덜 오고 예후도 좋다고 되어 있다.
유방암은 이 두가지 속성을 다 가지고 있는데, MRI를 보니 이 환자는 뼈 병변이 골형성성이 주된 타입이었다.
굳이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체중이 실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진통제로 통증이 금방 조절되었다.
방사선종양학과에서도 좀더 경과를 보다가 했으면 한다고 하신다.
득실을 따져보았을 때
폐병변도 약간 나빠져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 항암치료로 바꾸는게 좋을지 호르몬치료를 유지하는게 좋을지 고민했고, 나는 호르몬치료를 조금 더 유지해보고 CT를 찍기로 했다.
이상의 나의 치료 지침을 가지고 환자를 만났다.
환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설명했다.

그런데
내 설명의 포커스와는 달리, 나의 의도를 벗어난 환자의 질문이 계속된다.
"팔을 써도 되나요?"
(왼쪽 팔 어깨 근처에 큰 병변이 있다)
"당분간은 아끼시는게 좋겠어요."
"설겆이나 빨래는 해도 되나요?"
"부담이 되긴 하겠지만 식기세척기하고 매일매일 조금씩 돌릴 수 있는 작은 세탁기를 하나 사세요.
방 걸레질도 하지 마시구요. 그냥 기계에 맡기고, 걸레질도 걸어다니면서 대충 하시는게 좋겠어요."
"치료해도 계속 조심해야 하나요?"
"네 지금 당장 방사선치료를 하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통증이 오면 방사선치료도 하고 항암치료로 바꿔서 해야 될 것 같으니, 무게가 실리는 짐 들지 말고 집안일도 최소화하고, 운동도 걷는 거 정도로 살살하세요. 등산은 안되요."
"제가 치료가 잘 되도 팔 쓰면 안되나요? 저 운동은 안해도 되는데 팔은 써야 하거든요"
환자는 자꾸 팔을 써도 되냐고 묻는다.
"치료가 잘 되어도 팔도 그렇고 다리도 그렇고 활동을 너무 많이 하고 무리해서 쓰면 안되요. 왜 그렇게 팔 쓰는 걸 질문하시죠? 집안일은 가족들에게 도와달라고 하세요"
"80 넘은 노부모님밖에 안계시는데요, 부모님들을 제가 모셔야 해서요...."

결혼 안하신 분이고
직업은 선생님.
칠판 판서를 해야 하는데,
팔 써도 되는지
부모님 모시고 살려면 아무래도 소소한 집안일이 많은데
이런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팔을 쓰는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할 정도라면 자신에게 치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신다.
내 병이 낫지 않을 거라는거 잘 아는데
그래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을 수는 없다며
최선을 다해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치료할테니
부모님보다 더 오래 살게만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호르몬제를 유지해보다가 만약 효과가 좋지 않으면
다음에 항암치료를 할 때는 젬자를 포함한 복합요법을 쓸 예정이라고 했다.
젬자는 3주 중에 2주 병원에 와야 하는데 사는 곳이 지방이어서 가능하겠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수업일정 등을 고려해서 가능한 요일을 잡아 젬자로 케모를 해보기로 했다.

환자가 궁금해 하는 건
의사인 내가 고민하는 것과 다르다.
당연하다.
그 삶의 맥락에서 치료도 진행되는 것이니...
누군가 나에게
특기가 뭔가요? 그렇게 물어보면
항암치료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특기를 갖고 싶다.
꼭 부모님보다 오래 사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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