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런 거 신경도 안 쓰는거 아냐?"

오늘 이런 말 들으며 멱살 잡힐 뻔 했다. “환자가 안절부절 힘들어하는데 병원이 해주는 게 뭐냐”고. 환자가 밤새 섬망이 생기고 힘들어 하면서 라인도 다 뽑고 힘들어 했다.

내가 환자 콜을 24시간 다 받는 게 아니다보니 간호사, 인턴, 레지던트와 나 사이에서 협조 시스템에 간극이 생기면 환자가 밤새 고생을 한다. 매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병동 간호사나 인턴, 레지던트를 다 호출해서 왜 빨리 해결되지 않았는지 닦달해서 사연을 묻지 않는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겠지 그냥 묻어둔다.

이유를 불문하고 가족과 보호자는 환자가 힘들어하면 훨씬 예민해진다. 환자가 안절부절 하기 시작하면 온 가족이 다 같이 예민해지고 화내고 우리 병원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얼마 전 입원하신 내 외할머니도 진통제 용량이 많아서 몇 시간 의식이 흐려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족들에게 돌팔이로 몰릴 뻔했다.)

가족들의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 우리 병원의 한계도 있다. 그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는 가족들이 나에게 뭔가를 따지기 시작하고 병원 시스템 운운하며 불평할 때 사실 다른 면을 읽는다.

‘아, 환자가 곧 많이 나빠지겠구나. 돌아가실 것 같다. 그동안 불평이 별로 많지 않던 분인데, 잘 참던 분인데, 나하고 관계도 좋았는데, 그런 그가 이렇게 예민하게 군다는 건, 지금 컨디션이 진짜 안 좋다는 거구나.’

그렇게 환자가 안절부절하다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의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 그것은 환자가 나빠지는 싸인이다. 그래서 의사는 화를 내기보다는 지금 환자의 상태에 더 주목해야 한다. 가족들에게 환자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 곧 나빠지실 것 같다고(물론 이를 위해서는 의학적 근거가 확실해야 한다), 준비하셔야 할 것 같다고.

난 오늘 오전 외래 끝 무렵에 외래를 찾아온 화가 난 가족의 분노와 호통을 1시간 가까이 들어야 했다. 중간 중간 내가 할 말은 했지만, 사실 말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어떤 항암제를 써도 듣지 않는 난소암, 계속 나빠지고 배에 종양이 커져서 장운동도 안 되고 다리 쪽으로 종양덩어리가 자라는 게 눈에 보였다. 통증도 심해지고 있다. 방사선 치료를 하기엔 이미 폐전이도 많이 진행되었다. 환자는 매번 항암치료 할 때마다 부작용으로 고생만 하고 도움을 못 받았다. 그래서 그동안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항암치료 안하고 방사선치료, 통증블록치료 그런 보조적인 치료만 하면서 지내왔다.

그런데 환자가 여기 저기 병이 나빠지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고 항암치료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환자와 딸, 그리고 나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입원하여 엊그제 항암치료를 하였다. 원래 변비가 심했던 그녀, 예의 변비가 항암치료 후 더욱 악화되었다. 복막에 병이 다 번져있는 상태라 원래 장운동이 잘 안되고 변비가 심했었다. 항암제 맞고 더 심해졌을 지도 모르겠다. 자꾸 토하고 배를 거북해하니까 콧줄을 끼웠는데, 그것 때문에 목이 많이 아팠나보다. 환자가 잠을 제대로 못자고 급기야 섬망이 왔으며 횡설수설하고 이상한 언행을 많이 보였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는 진통제를 급격히 올리고 주사로 수면제를 써서라도 환자를 재우는 게 나은데, 당직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대학병원의 밤,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환자를 재우지 못하고 찔끔찔끔 약을 써서 환자 상태가 더 나빠졌다. 아주 힘들어했다. 외래에서 처음 본 남편, 외래 중간에 끼어 들어왔다.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고(오전 외래가 2시를 넘겼으니). 나에게 다짜고짜 “경험도 없고 환자도 제대로 안보는 의사”, “환자 변비 있는 것도 무시하고 항암치료만 하는 의사” 뭐 그런 말을 계속 퍼붓는다.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뭐 새로운 일도 아니고 난 사실 잘 대응했다. 보호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시간을 허락하고 외래는 지연되고 있지만 그냥 들어주었다. 그리고 의사로서 내가 생각하는 환자의 예후, 남은 시간 그런 것들, 앞으로 환자를 재우고 통증조절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나의 의견을 밝혔다. 항암치료를 한 후 양쪽 사타구니의 혹이 작아지기 시작하니 일단은 기다려보자고, 배의 종양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면 장운동이 풀어질 수도 있다고, 뭐 그런 얘기를 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게 아니라고, 못 먹어서 야위어서 작게 느껴지는 거라고 나를 대 놓고 무시하며 모욕했다. 뒤에 남은 환자의 진료가 있으니, 일단 진료를 다 마치고 얘기하자고 하여 남편을 돌려보냈다.

그렇게 나를 욕하는데도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서글프기는 했다. 간밤의 대처가 아주 민첩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러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니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외래가 끝나고 1년차에게 전화했다. 병동 콜 잘 받아주라고, 환자 힘든데 콜이 안 오면 인턴 교육을 다시 해야 하는 거라고,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밤새 문제가 해결이 안 돼 환자가 힘들게 방치하면 안 되는 거라고, 문제 해결이 안 되면 언제든 나에게 전화하라고. 지금 날 도와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그에게 간청했다. 녀석도 위축되었는지 조그맣게 대답한다. “네 선생님 잘할게요.”

결국 돌아가실 분인데 치료하고 나서 나도 환자도 가족도 힘들어졌다. 역시 indication이 안되면 항암치료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아직 젊고 임상 경험이 없어서 항암치료를 선호하나보다. 그냥 돌아가시게 했어야 했는데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무식하게 막 소리를 질렀지만, 내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환자 상태가 나빠지니 나도 마음이 안 좋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지겠지. 내 실력도 내 임상적 판단도 단단해 지겠지. 그런데 이렇게 상처받고 계속 살아야 하는 거라면 내 마음에도 만성염증이 딱지처럼 자리 잡을 것 같다. 그걸 한 꺼풀 벗겨내야 내가 강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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