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인간 삶의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일텐데
암환자가 되고 나면 이 문제를 입밖에 내기 어려워진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은
암이라는 중차대 하고도 심각한 병을 진단받고
살고 죽는게 걸려있는 판국인데
성에 대해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의사도 환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 나도 진료시간에 환자들에게 성 생활은 어떠신지 묻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묻지 않는게 아니라, 물어볼 시간이 없다.
 
그런데 만약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환자들에게 질문하고 상담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만약 내가 그런 걸 물어보면
환자들 대부분은 당황하거나 아니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왜 그런걸 나에게 물어보냐고. 지금 내게 그게 문제냐고.

혹은 그런 건 매우 사적인 문제인데 굳이 의사가 그런 것까지 질문하냐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 것이 치료와 관련이 있는거냐고. 그렇지 않다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래도
내가 여자의사이고
나이가 많지 않으니
내 또래의 여자 환자들 중에는 나에게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상의하는 환자들이 있다.
 
유방 절제술을 하고 나서 남편 앞에서 옷 벗기가 민망하다고. 아무래도 성형술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성형수술을 하고 나면 그 유방에 느낌이 살아있을지 걱정이라고.
 
여자로서 중대한 결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니 남편 마주보기가 어색해서 관계도 잘 안된다고.
남편은 나에게 요구하는게 많은 것 같은데, 정작 나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고. 그런데 뭔가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호르몬제를 먹어서 그런지 너무 건조해서 관계를 하기가 힘들고 아프다고.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고.

(항호르몬제를 먹으면 에스트로젠을 억제하기 때문에 여성은 성욕이 감퇴하기 마련이다).  
 
이 약을 5년이나 먹어야 하는데 남편이랑은 어떻게 되는거냐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남편도 처음 몇 달은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았는데 이제 나에게 짜증내는 것 같다고.
 
환자들이 그런 질문을 하면 나 역시 뾰족한 답을 모르니 둘이 같이 답답해한다.
 
전이성 암 환자도 부부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피임도 문제다.

자궁안에 루프를 가지고 있어서 항암치료를 하면 염증이 반복되어 자꾸 배가 아프다고.
남편이 피임을 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데, 환자는 남편이 콘돔을 쓰는 걸 싫어하는데 자기가 그런 말은 잘 못하겠다고.

수치가 떨어질 무렵에는 부부관계를 가지면 안될 것 같은데 그 기간에 남편이 자꾸 요구할 때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사실 환자가 암에 걸리고 나면 그것이 조기암이든 전이성 암이든 성 생활이 용이하지 않게 된다. 여자 환자는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위축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통계적으로 정확한 정보는 모르지만 이혼도 많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예전에 진료하던 두경부암 환자는 목에 기관절개를 하고 방사선치료를 하는 동안 이혼을 했다. 그녀는 전이성 암이 아니라 방사선치료를 하면 완치될 가능성이 높은 종류의 암이었는데도 말이다.

유방암, 여성암 모두 이런 문제로부터 아주 예민한 병이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암들은 투병중인 환자에게 이렇게 어려운 생존적 질문을 던진다. 누구와도 상의하기 어렵고, 상의해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뾰족한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생존의 고비를 넘나들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암환자들이지만
 
일상은 계속 되고 있다.

그 일상의 순간 순간이 어렵다.

그 어려움을 상의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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