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토요일 정오.

띵띠디딩 하는 알람소리와 함께  "코드블루 9층 1병동 외과"
라는 방송이 나지막히 울려 퍼졌고, 오후의 나른함을 즐기고 있던 1년차는 빛의 속도로 병동으로 튀어올라갔다.

신경외과나 내과에 비해 비교적 코드블루 방송이 울리지 않는 외과인데다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코드블루 방송이 울리면 외과 각 파트의 펠로우 선생님들과 여러명의 고년차 선생님이 우르르 몰려오기 때문에 병동일을 해야 하는 1년차들은 정작 CPR 상황을 manage할 일이 없었다.

누군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쏜살같이 달려갔건만, 그 곳에는 우왕좌왕하는 간호사 2명과 열심히 흉부압박을 시작한 똑똑한 인턴 한명 뿐. 아뿔싸..... 나머지는 전부 수술방, 외래에 있다. 그 곳에 있는 전공의는 나 하나 뿐이었다.

일단 병동에서는 충분한 처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턴은 흉부압박을 하면서, 나는 앰부를 짜면서, 간호사는 베드를 밀면서 환자를 중환자실로 내렸다. 일단 중환자실에 환자를 내려놓고 나니 이제 뭐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일단 학교에서 배운대로 CAB.  능숙한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모니터링장치를 달고 인턴은 컴프레션을 하고 있었다. 그 환자가 외과 타 파트에서 암 말기 환자라 가족들에게 DNR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거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말기의 말기까지 가서 최근 며칠간 상태가 안좋았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랴. 다른 인턴한테 DNR  동의서를 출력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러나 아직 가족들이 오지 않았고 동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기관삽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살이 너무 쪄서 목이 안보인다. 짧고 굵은 목은 기관삽관의 최악의 조건이다.
기관삽관이라고는 학생 때 마네킹에 연습해 본 것이 전부인 나로서 눈 앞이 캄캄해졌지만 일단 시도 했다. 잘 안들어 간다. 후두경으로 혀를 제끼면 피가 어디선가 콸콸 나와 시야를 가리고, 짧고 굵은 목이라 보이는게 당췌 없다. 5분을 헤메다가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주고 확 제꼈다. 성공했다.  불경할지도 모르지만 어려운 것을 성공했다는 생각에 순간 짜릿해졌다.  인공호흡기를 세팅하고 수액과 도파민을 달고 에피네프린을 주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던 도중 보호자가 왔다.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더 이상은 무의미하니 그만 하자고 이야기 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동의하는 순간까지 무의미한 짓을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이윽고 펠로우 선생님이 외래에서 왔고 다시 상황을 설명하였다. 심폐소생술은 30분만에 중단됐다.

결론적으로 환자는 사망했다.
그리고 나는  어려운 술기를 익혔다. 심폐소생술의 리더가 되어 상황을 진행해 봤다. 아마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더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해본 다는 것은 즐거운 일아다. 그것도 처음 하는 술기를 성공한다면  그 쾌감은 짜릿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내 실력과 능력이 늘어난다는 것은 정말로 신나는 일이지만, 내 실력을 키워주는 환자들의 상태는 당연히 좋지 않다.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여러 BEDSIDE PROCEDURE를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대 밖은 보호자들로 인해 눈물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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