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신기하다.
눈꽃빙수의 얼음보다 더 고운 얼음가루가 하늘로부터 흩뿌려진다는 것이 신비롭다.


눈은 응급실 당직을 서는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눈이 오고 날이 추워지고, 녹은 눈이 꽁꽁 얼었는데 거기에 또 눈이 쌓이면 어지간히 아픈 사람이 아니고서야 밤에 응급실에 오지 않는다. 눈을 뚫고 살얼음이 깔린 길을 뚫고 오는 환자들은 대개 중환이다. 얼빵(위궤양천공)이나 대장천공은 기본 옵션에 중요한 기저질환은 1+1으로 가지고 있고 아스피린 복용은 선택사양으로 탑재된 환자들이다.

그렇지만 자잘한 건수 여러건보다 큰 건 하나 터뜨리는 것이 속 편한 환타마인드를 가진 나로서는 눈오는날 밤은 편하게 응급실 당직을 설 수 있다. 눈이 그친 다음날 충수돌기염 환자가 곪아 터져서 응급실로 실려오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만 빙판길에서 넘어져 크고 작은 골절로 붐비는 정형외과 전공의들한테는 폭풍전야일테지.

눈은 초보운전자인 나에게 있어서 그닥 반갑지 않은 존재다.

햇볕조차 보지 못해 얼굴이 허옇게 질린채로 살고 있는 내가 눈길을 운전할 일은 거의 없다. 출퇴근이라는 개념도 없이 별관의 숙소와 본관만을 오가는 터라 이제 슬슬 자동차 배터리 방전을 걱정하며 슬그머니 블랙박스 전원을 꺼 놓아야 할 계절이다. 인턴때부터 무슨 신내림을 받았는지 세차만 하면 비나 눈이 왔다. 퐁당퐁당 당직을 서는 터라, 주말 오프때 거금을 들여 손세차를 하면 어김없이 다음날 비가 왔다. 가끔 응급실 환자로 힘들고 지칠 때 오프날 차를 몰고나가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세차를 하면 다음날은 좀 더 평화로운 (?) 응급실 당직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본과 1학년때 운전면허를 땄지만 장농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나는 인턴 때 첫 차로 새 차를 구입했다. 미숙한 운전 탓에 여러번 긁히고 그 때마다 공장에 들어갔었지만 나의 소중한 애마다. 학생때 부터 하나의 조그만 꿈이 있었는데 돈을 벌게 되면 내 분수에 맞는 새 차를 사고 그 차를 번쩍번쩍하게 잘 관리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바쁜 전공의 생활때에도 가끔 시간나면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지저분해 진 곳을 닦고 차 내부를 정리했다. 그러나 근무지가 바뀌고 전공의 전용 주차장이 실외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때의 초심을 지키가가 쉽지 않다. 세차만 하면 비가 오고, 차는 지저분한 예전의 모습으로 reset된다. 차라리 비가 오면 그 수압으로 먼지가 조금은 씻겨 나갈 수도 있지만 눈은 그 자리에 쌓여있다 녹아내릴 뿐이다.

요즘같이 툭하면 눈이오는 날씨때문에 세차를 할 타이밍을 잡는 것이 쉽지않다. 왁스 광택 코팅 대신 미세먼지 스모그 코팅이 되어 땟국물이 줄줄 흐르게 된 pearl white 색의 내 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주인을 잘못만나 질주본능의 발산은 커녕 그 본능을 땟국물 봉인에 가둔 채 야외 주차장 한켠에 배터리 방전을 두려워 하며 떨고 있는 내 불쌍한 애마여. 미안하다.이번 주말에는 다음주에 눈이 오더라도 꼭 목욕시켜 줄께.

뱀다리) 나 같은 사람도 스노우 타이어 달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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