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에게 다시 인턴을 하라고 하면... 정말 죽고 싶을 겁니다.

요즘은 많이 편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직종의 노동강도에 비하면 말도 안되죠.그런데 인턴 마치고 레지던트 1년차가 되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의사들이 180도 바뀝니다.

토대가 상부를 규정하는 것일까요? 인턴이란 무소속 1년 계약직 의사가 내과/외과 같은 든든한 보호벽이 있는 소속 진료과가 생기고 오더(처방)권이란 막강한 권력(물론 책임도)이 생기기 때문일까요? 좋게 생각해서 전공의 1년차는 인턴 못지 않게 힘들다보니 그럴까요? 글쎄요... 전공의가 되자마자 갑자기 그렇게 인턴 때는 투덜거리며 욕을 했던 행동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지 않거나, 뻔히 힘들어하는 인턴을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거죠. 그것도 자기가 직접 부르거나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를 통해서 일을 시키죠.

인턴시절에 '내가 레지던트(전공의)가 되면 이러지는 말아야지.'하는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1. 인턴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간호사들도 이름을 부르도록 확인한다.
2. 한밤중에 내가 깨어있으면서 환자에게 채혈, L-tube insertion(위세척), foley catheter insertion(요관 삽관) 등의 간단한 시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자고 있는 인턴선생님을 깨우지 않고, 나 혼자 한다.
3. 가능한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는다.
4. 저녁 근무가 없어서 인턴선생님이 집에 가는 날에는 나랑 밥/술을 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면, 먼저 퇴근시킨다.
5. 내가 할 수 있으면 간호사를 통하지 않고, 인턴선생님에게 직접 연락해서 일을 부탁한다.
... 기타 등등

막상 내과 전공의 1년차가 되니, 인턴 때보다 더 힘들더군요. 가뜩이나 국립대병원의 간호사의 비협조적인 분위기에서는 사소한 잡일도 모두 인턴을 부르고, 전공의들도 그렇구요...

그래도 나름 전공의 기간 동안 지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1년차로서 병동 주치의를 하는 동안과 2~3년차로 중환자실 주치의를 할 동안에도 꾸준히 노력을 했습니다. 아니라고 기억하는 제 후배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신있게 블로그에 쓸 수 있을 만큼은 저 자신과 한 약속을 전공의 기간 동안에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병동에 회진을 돌다보면, 인턴선생님의 이름을 부르지않고, 그냥 '인턴선생님'이라고 대부분의 간호사와 전공의는 부르더군요. 이건 전공의/교수의 잘못입니다. 전공의/교수가 인턴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기억을 못하면 큰 소리로 '인턴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알아보고나서 '홍길동선생님'하고 이름을 불러야합니다. 어떤 회사에서 '비정규직 이리와요.', '말단 사원 이리 와요.'하고 부르나요?
                                                                                     
다음에는 응급실에서의 내과전공의의 자세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