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먹!어!!!!!!!!!!!"

간성 혼수상태에서 아내의 간을 받고 20일만에 깨어난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가 눈을 뜨던 날, 주말도 포기하고 20일동안 번갈아가며 중환자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던 우리는 감격에 겨워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그날 기뻐 미칠것 같은 나머지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는지 병원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간이식을 받은 환자에게 필자가 있는 병원에서는 경정맥영양, 그러니까 "하얀 영양제"는 쓰지 않는다.
수술 후 영양보충을 위해 콧줄로만 식사를 했던 아저씨는 회복을 위해서는 입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20일동안 잠자는 중환자실의 왕자님을 했던 분이 과연 사래 걸리는 것 없이 입으로 잘 먹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던 환자들이 물이나 음식물을 잘못삼켜 흡인성 폐렴에 걸려 담당 주치의로 하여금 지옥의 코스를 걷게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금식했던 환자에게 식이를 진행하는 것은 겁이 나는 일이다. 그래서 한동안 콧줄로 식사를 계속하게 했다.

그러나 원래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언제까지나 콧줄로 먹일수는 없었다.
매일 치아를 빠득빠득 갈고 있는 것을 보면 저작근의 기능은 양호해 보였다. 씹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단 무언가를 조금씩 "입으로" 먹여보고 그 양을 늘려나가야 하는데 어떤 음식으로 "경구 섭취"의 스타트를 끊게 해야 할까. 펠로우 선생님과 4년차 선생님, 그리고 2년차인 나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물은 사래가 잘 걸리니까 안돼."
"물에 점성을 높이는 파우더 제제가 있는데 그거 섞어 먹여볼까요?"
"그건 맛이 없어 잘 안먹어."
"요플레는요?"
"글쎄."

그간 뭐라도 먹여보라는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몇몇 간호사들이 사랑과 정성으로 물을 숟가락에 떠다 바쳤지만 환자가 입을 벌리지 않아 번번히 실패 했었다고 한다. 이제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과연 무엇으로 입을 벌리게 할 것인가. 입이라도 벌려야 뭔가를 밀어넣을 것이 아닌가!!"

며칠간 제대로 잠을 못자 무아지경에 빠진 2년차의 입에서 방언이 흘러나왔다.

"각설탕이요"
"뭐?"
"20일 넘게 입으로 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 아저씨는 지금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것일수도 있잖아요. 각설탕은 의국에 쌓여 있으니 지금 슬쩍 해오면 될 일이고,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씹지 않아도 녹을테니까 사탕이나 초코렛보다야 낫지 않을까요."
"사래걸리면?"
"폭풍석션(suction)."
"야. 빨리 가져와봐."

그 2년차는 부리나케 17층으로 올라가 의국 비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종이컵에 각설탕을 한가득 가져왔고 다른 일 때문에 잠시 중환자실을 떠나야만 했다.

그로부터 20분뒤 밖에서 일을 해결하고 들어오니 펠로우 선생님과 4년차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아저씨가 각설탕을 입에 갖다대자마자 와득와득 씹어먹었어!!"
"그래서 신나게 몇개를 입에 더 넣어주니까 아저씨가 오도독 씹어 먹는데...."
"여러개를 물 없이 씹어먹었더니 입에 물렸나봐. 그래서 화가났는지 드디어 말도 했어!!"

"뭐라고 했는데요?"

"너!나!먹!어!!!!!!!!!!!"

그로부터 며칠 뒤 아저씨는 아내가 떠먹여주는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고, 그 2년차는 비상한 아이디어(=꼼수)가 충만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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