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여성환자분이 오셨습니다. 2년전 역류성식도염으로 치료 받고 그동안 증상 없이 잘 지내셨던 분인데, 얼마전부터 음식이 역류되면서 예전 증상이 다시 악화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마도 물을 많이 마신 다음인 것 같고 그래서 물을 다시 적게 드셨더니 증상이 좋아지더라고 하십니다.

왜 물을 많이 드셨다고 여쭸더니 얼마전 KBS "생로병사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에서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이 환자분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 오신 환자분도 최근 역류성식도염 증상이 악화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물을 많이 마신 다음부터 증상이 생긴 것 같다고 하십니다.


역류성식도염은 물을 많이 마셔도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 가천의대 역류성 식도염 설명


우선 결론을 말씀드리면, 역류성식도염은 물을 많이 마셔도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류성식도염 뿐만 아니라 물을 무조건 많이 마신다고 건강에 좋은 것인가..라는 문제, 그리고 미디어에 나오는 건강프로그램에서 말한 것을 무조건 신봉하고 과신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생각...물론, 물이라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며 당연히 물이 모자라는 상태는 건강을 해칩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인체는 항상성(homeostasis)를 유지하려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한 물의 양도 제 각각이구요. 예를 들어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라든지, 더운 곳에서 힘든 노동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물의 요구량이 많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이나 활동량이 적은 사람들의 물의 요구량도 적을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몸에서 물의 요구량을 결정하는 요소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혈장의 삼투압농도(osmolarity)입니다. 275-290mosm/kg의 좁은 영역내에서 조절을 합니다. 즉, 이 삼투압이 올라가면 갈증을 느끼게 되고 충분한 양의 물을 보충하려는 신체반응이 오는 것이지요.

신장에서는 물을 내 보내지 않구요. 다시 말해 의식을 하지 않아도 우리 몸에서는 기본적으로 물이 모자라면 보충을 하려는 반응이 저절로 생기며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물을 보충한다는 것입니다. 그 물은 꼭 컵에 따라 마시는 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식사를 하거나, 과일을 먹을 때도 수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을 먹게 되니까요.



그러니 갈증을 느끼지 않는데도 의도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는 경우 신장이나 심장기능이 정상인 경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신장기능과 심장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경우에는 부종등의 합병증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정신적인 질환으로 물을 엄청나게 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primary or psychogenic polydipsia) 이런 때는 혈장의 삼투압이 비정상적으로 떨어져서 뇌부종이 일어나 의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답니다.

미디어에서 방영되는 건강프로그램을 보면 "뭐는 뭐에 좋다"라는 식으로 단순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인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등식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환자분들도 이런 식의 간단한 등식을 좋아하시지요. 진료실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여기가 아프면 뭐가 나쁜 것이지요?"라는 질문을 참 많이 듣거든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고 진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하면 "그것도 모르냐.."라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인체는 그렇게 간단하고 설명이 쉬운 게 아니랍니다. 또한 인체는 아주 복잡하지만 나름대로 환경에 잘 적응하게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뭐는 몸에 좋다" 또는 반대로 "뭐는 몸에 나쁘다"라는 식의 단편적이고 직선적인 생각보다는 "그런 면도 있겠구나"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역류성식도염이 악화된 분들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물을 잘 드시는 것이 건강에는 좋겠지요. 그렇지만 너무 많이 드시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내가 평소 100정도의 물을 마셨다면 110정도를 드신다는 정도로 생각하세요.."

확인해보니 위의 두 분은 평소에 마시는 물의 두배정도를 의식적으로 드셨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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