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 정우영 원장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증후군성 저신장증(syndromic short stature)은 그다지 친숙한 개념은 아니었다.

1990년도 후반경에 터너증후군을 주제로 연구들을 수행하면서, Y 염색체를 가진 터너증후군 환자들에 빠져 들었다. 염색체 검사에서 Y 염색체가 증명되지는 않더라도, 유전학적 검사 기법을 이용하여 조사하면 Y chromosome fragments를 가진 터너증후군 환자들도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터너증후군 환자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면 gonadoblastoma 발생 위험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Y chromosome이나 Y chromosome 연관 물질의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 결과들을 국내외 여러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 태평양 소아내분비학회(AAPES)에서 한국에서 제출한 연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구연 연제로 채택되어 발표했던 사실이다.

이후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부산백병원이 경상권 희귀난치성 질환센터로 선정되고 , 내가 연구책임자의 자격으로 센터장을 맡게 되었는데, 이는 저신장증을 주요 증상으로 하는 다양한 유전학적 질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몰입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침범된 장기들과 관련된 다양한 동반 증상, 얼굴 생김새, 골격의 임상적 표현형 및 영상의학적 소견, 병리 조직학적 소견, 유전 양상, 가족력의 존재 여부 등의 자료를 토대로 의심되는 질환을 간추려, 기존에 발표 되어 있는 문헌들을 고찰하고, 비교 분석 하면서 임상적 추정 진단을 추론해 내는 것이 희귀 유전자 질환의 진단적 평가의 전형이었다.

저신장증과 관련된 유전학적 검사 기법의 비약적인 발전은 긴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1990년도에 들어서서 SHOX 유전자의 실체가 밝혀졌고, methylation, CNV,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법을 이용한 보다 간편하면서 신속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WES, WGS 검사는 기존의 희귀 유전자 질환의 진단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WES 검사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연구 환경은 전문화, 대형화, 고도화 되면서 미진단 상태로 병원들을 전전해야 했던 환자들의 '진단적 방황'은 급격히 감소했다.

7세 소녀가 작은 키를 주소로 병원을 방문했다. 이미 전국의 병원들을 전전하였고, 병명은 여전히 미진단 상태였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은 없었다. 얼굴 모양은 독특하여서 전체적인 윤곽은 역삼각형의 형태였다. 입은 길며 양측 입꼬리는 아래로 처져 있으면서 입술은 매우 얇았다. 코는 뭉툭했고, 눈은 깊이 파여 있으며 눈썹은 길었다. 귀는 아래로 처져 있으며 뒤쪽편으로 회전된 모양을 보었다. 머리는 소두증을 보였다.

손은 작은 상태였지만 손가락은 가늘었고 엄지는 매우 짧고 끝 부분은 곤봉모양으로 뭉쳐 있으며, 5번째 손가락은 안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골연령은 2살 이상이나 지연된 상태였다.

심한 지능저하와 함께 학습장애, 언어 지연, 심한 감정 기복도 있었다.

환자는 큰어머님 손에 양육되고 있었는데, 환자의 상태와 기존의 성장 내력을 너무나도 소상히 알고 계셨다. 환자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의논하는 날이면 큰 어머님의 목소리는 늘 차분해졌다.

몇 번의 외래 방문 이후 더 이상 환자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 환자와 함께 다시 내원 하신 날, 큰 어머님은 새로운 검사 방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느냐고 대뜸 이야기 하시며, 한동안을 흐느끼셨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여,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특수학교로 전학하였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환자가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같은 반 급우들을 수시로 괴롭혀서, 너무 힘들었다고. 키가 너무 작아서 놀림을 받다 보니 환자가 방어적인 차원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시고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위해서 내원하게 되셨다고.

환자의 임상 기록지와 이전 다니셨던 병원들에서 가지고 오셨던 의무기록지 들을 다시 찬찬히 살피면서, 흔하지 않은 어떤 증후군성 저신장증의 형태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때마침 진행 중에 있던 희귀질환 연구의 일환으로 WES 검사를 실시 할 수 있었고, SRCAP 유전자 변이에 의해 야기된 FloatingHarbor 증후근 이라는 진단 결과를 통보 받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 했었지만, 4~5년 동안 실시하였던 성장호르몬 치료는 환자가 성장호르몬 부족 상태가 아니었기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키 성장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최근 여러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 결과들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FloatingHarbor 증후근 이외의 다른 증후군성 저신장증에서의 성장호르몬 치료에 대한 결과들도 발표되고 있다.

환자의 키 성장은 이제 종료되었다. 여전히 특수 학교 생활은 지속되고 있으며, 급우들과도 티격태격하지만 이전과 같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환자의 이런 성향이 단순히 작은 키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Floating Harbor 증후군의 특징적인 증상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 질환은 이미 '저신장증을 동반하는 유전적 증후군'의 대표질환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구실로 전화가 왔다.

Floating Harbor 증후군으로 진단 받은 환자의 보호자인데 내 논문을 잘 읽었다고 하시면서,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은데 언제 쯤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문의해 오셨다.

시간을 주시면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정리하여 알려 드리겠다고 답변드렸다.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은 부산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소아내분비 전문의로 30여년간 부산백병원에서 저신장증 환자 등을 치료해왔다. 부산백병원 유전자연구위원회 위원장,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 희귀질환 경상권·부산권 거점센터장, 국가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 희귀질환 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4월 정년퇴직 후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아파트 상가에 ‘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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