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 정우영 원장

작은 키를 주소로 내원하는 환자의 범위는 넓다.

10여년 전만하더라도 성장 클리닉은 키가 같은 나이와 성별을 기준으로 해서 앞에서 3번째 이내에 해당하는 키(3백분위수)를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자극검사를 실시하여 성장호르몬 결핍의 유무를 검사 하는 것이 주된 진료였다. 물론 이때에도 질환이 아닌 단순히 키가 작은 환자들이 성장호르몬 투여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아마도 후자에 해당하는 환자 비율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키 성장과 관련된 진단과 치료 개념이 성형적인 성격을 띠는 셈이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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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장증을 가진 환자 중에서 유전자 이상에 의한 희귀질환 환자는 소수이다.

통계적으로 이 분야에 해당하는 환자의 수는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확진되는 환자의 질환 종류는 분명 증가 추세를 보인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유전자 검사의 비용이 고가였고, 특정한 질환을 미리 예상하여 원인으로 밝혀진 대상 유전자(target gene)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 방식이었기에, 검출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불과 몇 년이 지난 현재는 WES, WGS 검사 방식의 보편화로 인하여, 희귀 유전질환의 진단율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작은 키를 주된 임상상(clinical phenotype)으로 동반하는 유전성 희귀질환의 종류도 늘고 있다. 다만 각각의 질환의 발생빈도가 매우 낮아서 이런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치료가 시행되는 경우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다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유전적 요인에 의한 희귀질환의 경우는 대부분 어린 나이에 진단이 되기 때문에, 저신장증에 대한 진단적인 평가나 치료는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환자들은 타과에서 협진으로 의뢰되어 오는 경우가 많다. 확진이 되게 되면 이는 곧 동반된 증상들을 함께 적절히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결과를 얻게 된다.

기억나는 대표적인 질환 중의 하나가 KGB 증후군이다.

KGB 증후군은 상염색체 우성의 유전 질환이다.

ANKRD 11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데 출생 시부터 발달장애, 지능저하, 학습장애 등과 같은 신경학적 분야의 증상이 현저하여 주로 소아신경 분야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 다양한 골격계 이상도 50% 이상의 환자에서 나타나는데, 얼굴 기형과 이빨의 형태 이상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이빨의 형태 이상, 특히 앞니의 큰치아증(macrodontia)을 가진 남아가 치과 진료를 받던 중 작은 키에 대한 협진을 의뢰 받았다. 5번째 손가락의 옆굽음증(clinodactyly), 척추뼈 기형, 잠복고환, 선천성 심장 기형 등도 동반되어 있었다. 키는 매우 작았으나 성장호르몬 자극검사에서는 성장호르몬 결핍은 없었다.

WES 검사로 KGB 증후군으로 확진했다.

6년 동안 성장호르몬 치료가 시행되었는데, 이 환자에서는 성장호르몬 치료가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실시하면서 주위의 여러 단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KGB 증후군이란 병명은 이 질환을 최초로 진단했을 때의 환자 가족들의 성을 모아서 명명했다. 발생빈도가 매우 낮아서 문헌상으로도 보도된 증례 자체가 소수였기에, 장기간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았던 증례는 거의 없었다.

발달장애, 학습장애, 청력 이상이 심했던 탓에 환자와의 원활한 의사 소통은 어려웠지만 장기간에 걸쳐서 추적관찰을 하는 동안 이 환자가 내게 보내주었던 미소와 독특한 고마움의 표현 방법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환자는 되풀이해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올 때마다 키가 커져서 정말 좋아요. 그런데 이 치료가 이빨도 더 크게 하는 것은 아니겠죠?”

손가락이 계속 더 휘어지는 것 같아요? 설마 손가락을 더 휘어지게 하지는 않겠죠?”

큰 앞니를 보인 채로 손을 활짝 펴면서 질문을 하는 환자의 얼굴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다.

질문을 할 때 마다 나는 두 손을 내 저으며 답해 주었다.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동반된 골격계 기형들도 치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본인만의 화법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나는 받아 들였다.

유전적 희귀질환의 경우 비록 성장호르몬 치료가 효과적인 결과를 보였더라도, 동반된 증상들의 치료 효과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신장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보람과 좌절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언젠가는 좌절이 없어질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오늘도 내가 택한 길을 그냥 가고 있다.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은 부산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소아내분비 전문의로 30여년간 부산백병원에서 저신장증 환자 등을 치료해왔다. 부산백병원 유전자연구위원회 위원장,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 희귀질환 경상권·부산권 거점센터장, 국가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 희귀질환 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4월 정년퇴직 후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아파트 상가에 ‘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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