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성장호르몬과 갑상선 호르몬으로 대표되는 내분비계의 역할 못지않게, 정상적인 신장 기능은 특히 영·유아기 시기의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저신장증은 성장호르몬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며, 의료 보험 적응증의 대상 질환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실시하는 신장질환 screening 진단 프로그램은 신장질환의 초기 증상·징후인 혈뇨, 단백뇨, 고혈압, eGFR 감소 등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어서 사구체 질환으로 인한 소아 연령에서의 만성 신부전의 발생 빈도를 현저하게 감소시켰다.

만성신부전 환자에게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행 했던 사실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로 기억될 정도이다.

산전 초음파 진단의 보편화는 다양한 신장 기형들을, 출생 때부터 정확하게 진단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신장 기형으로 인한 이차적인 신장 기능 저하를 효과적으로 예방 할 수 있게 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사진 : 게티이미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사구체 질환과는 다르게, 신세뇨관 질환은 영·유아기 시기부터 심각한 성장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신세뇨관은 이온, 유기용질, 약물, 독소와 수분 등의 주된 운반 통로의 역할을 하는 상피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신세뇨관 질환은 주로 운반 기능 장애의 결과로 발생한다.

세뇨관 운반계의 대부분이 이온 통로, 수분 통로나 용질 운반체 이므로 운반체 DNA의 돌연변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유전성 신세뇨관 질환의 경우, 평생 체내 산-알칼리 대사 이상과 전해질의 심각한 불균형을 적절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Bartter 증후군은 신세뇨관의 한 부분인 헨레고리 상행각 부위에서 나트륨 재흡수 장애로 인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자칼륨혈증성 대사성 알칼리증을 일으키고, 흔히 고칼슘뇨증을 동반하며 고레닌혈증, 이차성 고알도스테론 혈증, 프로스타그란딘 E2 (PGE2)의 증가를 야기시키는데, 혈압은 대부분 정상범위를 유지한다.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하지만, 상염색체 우성, X 연관성 열성으로 유전하기도 한다. 이온 통로 돌연변이의 종류에 따라 6가지의 형태가 존재한다.

관련된 유전자들은 SL12A1, KCNJ1, CLCNKB, BSND, CLCNKB, MAGED2, CASR 이다.

발생 빈도는 매우 낮아서 1/1,000,00 명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 질환은 특히 성장장애가 심해서 다른 신세뇨관 질환에 비해서 성장호르몬 치료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출생 시부터 저칼륨혈증성 대사성 알칼리증, 소변 내 염소의 대량 소실과 고칼슘뇨증을 보여온 환자에서 SL12A1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여 Bartter 증후군으로 확진한 환자가 있었다.

진단을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칼륨 보충과 함께 대사성 알칼리증 교정, 프로스타글란딘 조절을 위한 인도메타틴 치료가 시행되었으나, 성장장애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7세경에 성장호르몬 자극검사를 실시했고,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동반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Bartter 증후군 환자의 증례가 소수에 불과했으며, 성장호르몬 결핍이 동반된 경우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성장호르몬 투여 후에 환자의 키 성장은 놀랄 만큼 좋아졌다. 15세 에 이르러 키가 165 cm까지 자랐다. 건강보험 규정에 따라 165cm 를 넘어가면, 이후로는 자비로 성장호르몬 치료를 지속해야 했는데, 1년 남짓 성장호르몬 치료를 계속해서 받으면서 키가 거의 170 cm까지 자랐다.

신장질환의 복잡한 개념들을 환자 및 보호자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오랜 기간의 치료를 지속해가면서 환자 입장에서,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한 정확한 의학적인 경과 과정들을 이해하는 것이, 예후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 귀중한 교훈을 체험하게 됐다. 신세뇨관 질환은, 어쩌면 의료인들에게도 낯선 질환 일 수 있다.

예약이 잡혀 있는 날이면 나는 Bartter 증후군에 대한 논문들을 되풀이해서 읽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묻는 질문들에 가능하면 쉽고 간략하게 대답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환자가 내게 던지는 질문들은 늘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질환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무엇보다도 정확성과 전문성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새로운 지식들을 전달하려는 습성이 있다.

내가 이 환자에게서 느꼈던 것은, 질환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식의 나열보다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치료들이 환자 본인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서 환자 자신이 느끼는 치료 반응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나머지 약들은 중단 하면 안되나요?”

불쑥 던진 질문에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했다.

키를 잘 크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꾸준한 투약으로 인해서 몸 안의 체액과 전해질 상태가 안정화되었고, 신장의 기능도 정상을 유지하고 있어서, 성장호르몬이 체내에 투입되었을 때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

아빠보다 키가 더 클 수 있겠죠?”

장기간의 치료 기간을 요하는 난치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매일 매일 복용해야만 하는 투약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기 쉽다. 몇 번의 투약을 빠뜨리더라도 당장 환자 본인이 느끼는 이상 징후나 증상이 미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은 서서히 질병의 경과가 진행성으로 바뀌고, 예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환자 본인이 이런 사실을 늘 자각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은 부산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소아내분비 전문의로 30여년간 부산백병원에서 저신장증 환자 등을 치료해왔다. 부산백병원 유전자연구위원회 위원장,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 희귀질환 경상권·부산권 거점센터장, 국가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 희귀질환 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4월 정년퇴직 후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아파트 상가에 ‘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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