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 정우영 원장

어떤 단어나 사물, 그리고 인물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가 뇌리에 각인되면 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인물 유형 중에서도 유독 요정은 나에게는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실제 형체에 대한 궁금증은 늘 내 주위를 맴돌았다.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요정들은 나름 각각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는 이들 사이에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친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요정은 아마도 이빨 요정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자라던 때는 이빨을 머리 밑 베개 속에 두고 잠이 들면 이빨 요정이 가져가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보면서도 요정이 저렇게 커도 되는지 엉뚱한 불만을 갖기도 했다.

손녀가 부산에 내려올 때면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다. 내가 즐겨 읽어 주곤 하는 몇 몇의 책 중에서, ‘리치아 오디노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쓴 핀 아저씨의 꽃잎 드레스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들이 내가 지니고 있던 요정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사진출처: 게티 이미지
사진출처: 게티 이미지

조그마한 키에, 주먹 보다 작은 크기의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을 가지고 있고, 어디든지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가벼운 체구를 가진 형상의 이미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순식간에 쑥 자랄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그런 아이.

특징적인 얼굴 모양(prominant facial dysmorphisms)이나 동반된 증상/징후에서 질환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던 때가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터너증후군 만큼이나 내 머릿속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염색체 질환,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염색체 미세 결실 증후군, 윌리엄스 증후군(7q11.23 결실)이다.

의과대학 시절 이 질환의 명칭은 ‘Elfin face syndrome’이었다. 특징적인 얼굴 모양을 요정의 얼굴로 표현해 실제 환자의 모습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었다.

첫 환자는 고칼슘혈중을 가진 신생아였다. 심장 판막 이상도 동반되어 있었으며, 부당 경량아 상태여서 키도 작았다. 환자가 성장하면서 칼슘 이상은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으며 키도 조금씩 성장 백분위수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사춘기 조숙의 증상이 뚜렷해 졌고, 결국에는 중추성 사춘기 성조숙증으로 인해 관련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환자의 얼굴 모습은 특별히 남들과 확연히 다르지는 않았다이후 윌리엄스 증후군으로 진단된 환자 수는 서서히 증가했다.

환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윌리엄스 증후군은 요정의 얼굴을 가진 아이의 이미지 보다는, 소리에 매우 예민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주위에서 발생하는 소리에는 무척이나 민감하고 싫어한다는 것이다.

특히, 심수봉 노래를 좋아했던 환자가, 4주마다 사춘기 조숙증 치료를 위한 GnRHa 주사를 맞으러 오는 날이면, 소아청소년과 외래 식구들은 환자가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곤 미리 환자의 방문을 알 정도였다. 나는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행한 경험은 없으나, 성장호르몬 치료가 최종 키를 유의하게 증가시켰다는 보고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질환에서 성장호르몬/IGF-1 축의 기능은 정상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르지만, 부당 경량아의 상태로 출생한 환자의 경우에는 이로 인한 영향으로 키 성장이 더 작아질 수 있기 때문에 성장호르몬을 투여하기도 한다.

윌리엄스 증후군에서 최종 성인 키는 여자 152~154cm, 남자 159~165cm 정도로 보고되어 있다.

나에게 요정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환자는 오히려 Andersen-Tawil 증후군이다. 17q24.3 부위에 위치하고 있는 KCNJ2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윌리엄스 증후군에 비해서는 환자의 수가 훨씬 적다. 특징적인 얼굴 모양을 보이는데 머리둘레가 작고, 귀는 낮게 위치하며, 양 미간 사이가 넓고, 턱이 작으면서, 눈꺼풀 틈새가 아래로 처져 있다. 심장 질환도 흔히 동반하며, 지능 저하가 있고, 대부분이 부당경량아로 출생하여 키가 매우 작다.

KCNJ2 유전자 변이를 가진 자매가 병원에 오는 날은 여지없이 분잡스럽다. 둘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다투는 수준이다. 언니는 자기 몫을 하려는 듯, 동생 챙기기에 바쁘며 키를 잴 때마다 간섭한다. 동생의 키가 좀 더 많이 자란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언니로부터 원망을 들어야 했다부당경량아로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행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키 성장이 많이 좋아졌다.

정년을 하고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다보면 대학병원 재직 중 있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올라 올 때가 있다문득 요정이 완전히 성장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요정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까?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

정우영 원장은 부산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소아내분비 전문의로 30여년간 부산백병원에서 저신장증 환자 등을 치료해왔다. 부산백병원 유전자연구위원회 위원장, 희귀난치성질환센터장, 희귀질환 경상권·부산권 거점센터장, 국가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 희귀질환 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4월 정년퇴직 후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아파트 상가에 ‘정우영소아청소년과의원’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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