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 우리가 소위 ‘미국’하면 떠오르는 뉴욕, LA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아간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직장을 잡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결혼을 미루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나를 낳으면 하나를 더 낳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고. 엄마가 된 여자들은 경단녀가 되는 것에 불안해하며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엔 아이를 선택하게 되고,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다니게 되면 뭔가 공허해진 마음을 다시 일로 채워보려 한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하고, 은퇴를 꿈꾸며 소처럼 일하는 옆집 사람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이야기 같기도 한, 그런 ‘흔한’ 삶. 하지만 이런 흔한 삶과는 너무나 다른 형태의 삶도 있다는 것을 나는 환자들을 통해 배웠다.

TV에 보면 가끔 전기 없이 사는 사람들, 마차를 이용해서 생활하는 사람들, 신기하게 생긴 옷과 모자를 쓰고 사는 사람들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180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삶. 내가 미국에 와서 배운 새로운 삶의 모습에는 유대인(Jewish), 아미시(Amish), 아팔라치안(Appalachian) 등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종교라고도 하고, 인종이라고도 하고, 문화라고도 하는데,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유전상담을 공부했던 신시내티라는 곳에는 꽤 많은 아미시들이 살고 있다. 약 6만여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미국 전체에서 제일 많은 숫자라고 한다. 내가 클리닉 로테이션(clinical rotation)을 했던 Cincinnati Children's Hospital에는 종종 아미시들이 보였다.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진한색 바지와 조끼를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긴 치마에 앞치마 같은 것을 입고 보넷모자를 쓰고 있었다. 마을에 자동차가 한 대 있는 곳도 있지만, 많은 아미시들은 아직 마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병원에 와야 하는 상황이면 사회복지 서비스 단체 같은 곳에서 차를 빌려주기도 한다. 

한 번은 클리닉 로테이션이 없는 날임에도 특이한 케이스가 있다며 슈퍼바이저가 나를 불러 참관하게 되었다. 딱 봐도 아미시인 가족이 들어왔는데, 나의 슈퍼바이저인 유전상담사의 말에 의하면 이 아미시 가족이 사는 마을에는 전화가 한 대 밖에 없어서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직접 수취인을 찾아서 바꿔줘야 하는 시스템이라 연락을 취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와서 검사 후 상담 스케줄을 잡기 위해 연락을 했는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이의 부모님과 연락이 닿아 결과가 나온 지 한달만에 드디어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Bardet-Biedl syndrome을 일으키는 BBS1 유전자에 병적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Bardet-Biedl syndrome(BBS)이란 원뿔세포 막대세포 이상증 (cone-rod dystrophy), 비만, 지적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축후성 다지증, 저성선자극호르몬 성선저하증(hypogonadotropic hypogonadism), 비뇨생식기 기형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BBS는 열성유전을 하는 질환으로, 현재까지 총 26개의 유전자에서 발견된 병적변이로 인해 질환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검사 후 상담에서는 결과를 이야기하고, 질환의 증상, 유전방식, 관리방법, 재발률(recurrence risk; 이 부부가 또 임신했을 때 같은 질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확률) 등과 같은 내용을 사회심리학적인 상담과 함께 설명하게 된다. 환자와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에 따라 상담의 방향이 많이 바뀌기도 한다. 이 환자의 경우 다지증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키웠지만 아이가 2살이 다 되어서야 걷고 가족 중 유일하게 비만이어서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교회 목사님(bishop)의 말을 듣고 큰 병원에 와본 것이었다. 아미시들은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병원 방문과 검사는 모두 현금으로 내는데, 금액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자주 병원 진료를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당시 환아는 만 3세였는데, 이 부부의 셋째였다. 부부는 20대 초반. 피임을 하지 않는 아미시의 특성상 결혼한 지 3년차였는데, 벌써 아이가 셋이었다. 이 부모는 여느 아미시들과 다름없이 *8학년 정도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이 분들께 유전자, DNA, 유전질환, 유전자 검사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한 상담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경험이 많은 슈퍼바이저의 상담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어떻게 상담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인지 많이 배웠던 기억이 난다. 
(* 아미시들은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모두 한 반에 모여 수업을 듣는데, 선생님도 8학년까지만 공부한 사람들이 맡아서 가르친다고 한다. Reference: https://www.amishvillage.com/blog/amish-education/) 

이렇게 극단적인 케이스 말고도 그냥 평범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미국 시골에 사는 분들 중 초등학교 학력 정도만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시는데, 이 분들은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굳이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끼신 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민자들의 경우에는 본국에서 다양한 이유로 교육의 혜택을 못 받고 오신 분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이 분들께 유전학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그와 관련된 결정을 하시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유전상담사로서 일했던 첫 직장에서 캘리포니아 시골에 계신 분들께 그쪽 산부인과와 연결해서 Skype로 유전상담을 제공해주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하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려운 내용을 바탕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분들께 상담사로서 함께 고민해드릴 수 있었다는 것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만나는 모든 환자들이 유전상담을 필요로 했지만, 사회 취약계층에 속하신 분들을 상담할 때면 내가 유전상담을 공부하길 잘했구나, 나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유전자 검사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고, 이제 미국에 있는 클리닉에서는 whole genome sequencing을 오더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유전상담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오늘 이야기한 지리적인 장벽, 문화의 장벽, 교육의 장벽은 내가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장벽들이 유전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더욱 양질의 유전상담을 제공하는 유전상담사가 되어야지 하고 새삼스레 다짐해본다. 

<<환자와 관련된 내용은 각색되었습니다.>>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 했다. 현재는 미국에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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