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UCLA 소아 유전학과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할 당시 근육병 증상이 있어서 근육병 관련 유전자 패널 검사부터 시작해서 전장엑솜시퀀싱(Whole Exome Sequencing; WES)까지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던 환자가 있다. 남자 환자였고, 20대 초반이었는데, 내가 이 환자를 맡게 될 당시에는 이미 혼자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져서 시설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증상이 발현되기 불과 1년 전까지 아주 건강한 청년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멕시코에 계시고 혼자 미국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 환자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 병원을 오기 힘들어졌을 때쯤, 이모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이모의 등판으로 처음에는 의심스럽게 느껴졌지만, 환자와 함께 내원해서 만났을 때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었다. 자신의 아들과 동갑이라서 더 마음이 가는 조카라고 했다. 가족력을 조사하면서 이 환자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이모인지 알기 위해 여러 번 물어봤지만, 아주 먼 친척이라며 말해도 모른다고 계속 얼버무렸다. 당시 멕시코도 우리나라처럼 '이모'라는 말이 다양하게 사용되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전장엑솜시퀀싱은 trio, 즉 부모님과 환자를 함께 검사할 때 가장 정확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요즘 많이 사용하는 전장유전체시퀀싱(Whole Genome Sequencing; WGS)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유전체를 비교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마로부터 대략적으로 50%, 아빠로부터도 대략적으로 50%의 유전체를 물려받는데, 가족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변이(variant)'들이 있다. '변이'라고 해서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유전체에 '다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다름'을 전문적인 용어로는 '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유전체에 다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 다르게 생긴 것이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WES나 WGS 검사를 하면 이 변이(variant)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알고리즘으로 걸러내도 환자의 병력과 가족력을 따져가며 사람이 직접 걸러내야 하는 변이들이 있다. 특히 병적변이인지 여부를 따져볼 때 증거들이 애매한 경우들이 그렇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보고된 환자들의 케이스에서 본 적 없는 변이이거나, 건강한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에 나와 있거나/없거나 등의 경우다. 증거가 부족한 경우 임상 데이터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유전자의 성격과 환자의 병력이나 가족력에 따라 발견된 변이를 어떻게 분류할지 결정하게 된다. 

쉬운 예로 만약 건강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변이인 경우, 그 변이는 그 가족에서는 '정상변이'이겠구나 생각하고 거를 수 있다. 하지만, 아빠가 환자보다는 훨씬 경미하지만 뭔가 의심스러운 증상이 있는데 변이도 마침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내가 만났던 이 환자의 경우에도 검사를 진행할 때 부모님 샘플이 없어서 single로 전장엑솜시퀀싱을 했던 케이스인데, 내가 이 환자를 맡게 되면서 제일 먼저 추진해봤던 것이 부모님의 샘플을 받아 trio로 검사를 다시 해석해보는 것이었다. 몇 달 동안 멕시코에 있는 검사기관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혈액이나 DNA 샘플이 국경을 넘어올 때 필요한 서류, 관련 정부부처까지 정말 많은 곳에 연락을 해보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다.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가서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있는데,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 몇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는 이 환자의 부모님께서 부족단위로 생활하는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 살고 계셨는데, 그 분들과 연락이 닿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두번째로는 이모라는 분의 말에 의하면 혈액을 채취하는 것에 대해 이 환자의 부모님을 포함해서 마을분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검사기관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연락이 닿았던 기관들은 모두 도시에 있는 큰 병원들에 있었는데, 대부분이 차로 5~6시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혈액이나 DNA가 국경을 넘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내가 통화했던 기관마다 말이 다 달랐다. 차라리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와서 피를 뽑고 가는 게 훨씬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경제적인 상황과 비자 관련된 문제들로 불가능했다. 

결론은 일을 추진하기 시작한 지 3달여쯤 되었을 때 나도 포기하게 되었는데, 그때 포기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지금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기는 한데, 그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본인의 모습에 속상해하고 절망할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특히 병의 진행도 빠른 케이스여서 더 마음이 쓰였다. 

연말이면 그 환자 생각이 많이 난다. 잘 있을까, 아직 살아는 있을까 등의 생각. 내가 UCLA를 떠나올 당시 연락할 일이 생겨서 연락을 한 번 했었는데, 그 환자가 있는 기관의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환자가 많이 우울해 한다는 이야기와 몇 번 CPR을 시행 했었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웠었다. 이 환자처럼 원인도 모르고 고통속에 살아가고 계실 많은 환우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연말이 되면 세상은 들뜨고 행복감이 배로 고조되는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 환우분들과 가족분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힘든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전상담사로서 크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나를 만나는 환자분들과 가족분들 한 분 한 분이 유전상담을 받으며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고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 했다. 현재는 미국에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 사람도, 한 가정도 유전질환으로 외롭게 싸우지 않도록 함께 하는 따뜻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네이버 카페 '유전질환의 모든 것'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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