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Sexgender라는 단어 모두 우리나라 말로는 성별로 번역된다. 하지만 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요즘 시대에는 성별과 관련된 용어들이 더 디테일해지고 있다. Sex라는 단어는 생물학적인 성, 즉 가지고 태어나는 성을 의미하고, gender는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회적인 의미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엔 여기에 더해 gender expression, gender identity, LGBTQIA2S+, nonbinary, variations of sex characteristic (VSC) 등 다양한 용어들로 다양한 성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유전상담사협회인 NSGC(National Society of Genetic Counselors)에서 14년만에 가계도 명명법 (pedigree nomenclature) 개정판을 발표했다.

개정판을 발표한 가장 큰 이유는 가계도에 성의 다양성을 담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저자들은 유전상담이 피상담자가 자신의 성별, 성 정체성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예전 NCCN(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에서 트랜스젠더 남성(태어날 때는 여성이었는데 남성으로 바꾼 경우)은 남성을 상징하는 네모 안에 여성을 상징하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트랜스젠더 여성(태어날 때는 남성이었는데 여성으로 바꾼 경우)은 여성을 상징하는 동그라미 안에 남성을 상징하는 네모를 그리도록 명명법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비판을 받았고, NSGC도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인 피상담자가 자신을 규정하는 성별에 해당하는 심볼을 그리고(여성은 동그라미, 남성은 네모), 그 밑에 태어날 때 여성이었던 사람은 AFAB(assigned female at birth), 태어날 때 남성이었던 사람은 AMAB(assigned male at birth)라는 용어를 각 심볼 밑에 적는 것을 추천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규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혹은 자신을 한 개 이상의 성으로 규정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다이아몬드 심볼을 사용하되 그 밑에 AFAB, AMAB, 혹은 UAAB(unassigned at birth)를 적도록 했다. 물론, 기존에 성별을 몰라 다이아몬드 심볼을 쓰던 것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요즘에는 성을 다양하게 규정하는 만큼, 가정의 형태도 전통적으로 엄마, 아빠가 있는 가정 외에 엄마가 두 명인 가정, 아빠가 두 명인 가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별이 같은 커플이 인공수정 방식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를 생각보다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법적으로 부부가 되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일이지만.

산전진단 유전상담사로 일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케이스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 환자는 만 32세 여성이었는데, 인공수정 방식으로 임신한 분이었다. 가족력을 조사하기 위해 가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분이 ‘my husband’라는 단어 대신에 ‘my partner’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물론 이성커플의 경우에도 partner라는 단어를 쓰기는 하지만, 보통은 husband, boyfriend 등의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 확인 차 물어보니 동성커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인공수정을 한 것도 자신의 파트너의 난자를 사용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의 인공수정은 자신의 난자와 기증받은 정자를 체외수정해서 본인의 자궁에 착상 시키는데, 이 커플의 경우에는 파트너의 난자와 기증받은 정자를 체외수정해서 환자의 자궁에 착상 시킨 경우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계도를 그리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더 복잡했던 것은, 이 커플에게 첫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환자의 난자와 기증받은 정자를 체외수정해서 환자의 파트너에게 착상 시켜 아이를 낳은 경우였다. 정말 열심히 머리를 굴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가계도를 그릴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최선을 다해 그려 놓고, 그 밑에 열심히 설명을 써 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많은 가계도 개정판이 나와도 항상 그릴 수 없는 변수는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미국에 있는 사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이메일 맨 마지막 서명하는 부분이나 전자명함에 she/her/hers, he/him/his, they/them/their 같은 것이 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gender pronouns라고 하는데, 이는 그 사람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자신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성 정체성이 다양해진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미국에서는 유전상담사들이 환자가 갖고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질환이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다 보니 누군가와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과 다른 것이 다양한것이라는 의미도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 했다. 현재는 미국에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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