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ticsMode 김아랑 대표

2021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인구동향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가임 여성 1명당 0.808명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2007년에서 2020년 사이 2.12명이었던 것이 1.64명으로 떨어진 이후 계속해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21년 1.66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출처: https://www.prb.org/resources/why-is-the-u-s-birth-rate-declining/).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여성들의 사회생활과 그 외 다양한 이유들로 아이를 출산하는 연령이 늦어지거나 아예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종과 문화가 다양한 미국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자기가 속한 문화에 의해 혹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열 두번의 임신도 거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되었다. 

산부인과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했을 당시, 참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엘에이에서 일했을 당시에는 멕시코에서 이민 오신 분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자녀의 수가 많았다.

내가 만났던 45세 산모는 열 두번째 임신으로 내원했는데, 영어를 하지 못해 전화 통역을 이용해서 유전상담을 진행했다. 가족력 청취를 하는데, 가계도를 그리기가 복잡했다.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5명의 아이를 낳고, 이혼 후 두 번째 남편과 3명의 아이를 낳고, 그 이후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3명을 낳은 후 지금 임신한 태아는 22살인 첫째 아들 친구와의 사이에서 갖게 된 것이었다. 멕시코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다가 이민 오신 분이었는데, 그 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결혼, 이혼의 개념이 조금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멕시코에는 아직 부족 단위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같은 멕시코 사람이라고 해도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때 배웠다. 

뉴욕 맨하튼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일할 당시에는 유대인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 중에서도 정통 유대교인들을 꽤 자주 만났는데, 한국에서 자란 나에게는 생소한 문화이다 보니 유대인 문화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 했었다. 유대인들의 경우 근친결혼이 많다 보니 특정 유전질환에 대한 보인자 빈도가 높은 편이다.

예를 들면, Ashkenazi Jewish에서 보인자 빈도가 높은 질환들로는 고셔병 (Gaucher disease; 15명당 1명),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24명당 1명), 테이새크스병(Tay-Sachs disease; 30명당 1명), 가족성 자율신경이상증(familial dysautonomia; 35명당 1명), 캐너번병(Canavan disease; 50명당 1명) 등이 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신이 특정 유전질환에 대해 보인자 빈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유대인 커뮤니티 내에 있는 센터들 중 보인자 빈도가 높은 질환들만 묶은 유전자 패널 검사 등을 제공해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검사를 한다고 해도 모든 유전질환에 대한 보인자 여부가 검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들이 생긴다. 

뉴욕에서 상담했던 커플 중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민 온 유대인 부부였는데, 이 산모도 열 두번째 임신으로 내원했었다. 가족력을 조사해보니, 두 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면 세 번째는 항상 초음파상 이상이 발견되어 임신중절을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여섯 번째, 아홉 번째 임신이 임신중절이었다). 물론 우연에 의한 패턴이긴 했지만, 이 부부에게는 불안을 가중시키는 패턴이었다. 이 패턴에 의하면 이번 임신도 태아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태아는 초음파 상 6.1mm의 격리된 낭포성 습도종(septated cystic hygroma) 소견을 보였고, 부부는 바로 임신중절을 결심했다. 초음파상 이상이 발견되고 바로 나에게 왔는데, 상담을 하면서 이 부부가 간절히 원인을 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 임신에서 태아에 이상이 발견되어 임신중절을 할 때도 태아 부검이나 생검을 통한 유전자 검사 등을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산부인과에서 환자에게 제공하던 보인자 검사가 283개의 질환을 검사했는데, 다행히 그 중 하나에서 원인을 찾게 되었다.

부부를 모두 검사해보니 둘 다 네말린 근병증 2(nemaline myopathy 2)라는 질환에 대해 보인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신중절을 한 뒤 태아세포를 통해 검사해본 결과 태아가 이 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전 임신에서 태아에 이상소견을 보였던 것도 이 질환 때문일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네말린 근병증 2를 가진 환자분들의 증상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얼굴, 목, 근위 사지 등의 근육에 힘이 없고, 심부건 반사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약 16% 정도가 태아시기부터 증상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가 만난 산모의 태아가 그런 케이스였던 것이다. 아이가 많아도 한 아이 한 아이 모두 소중하듯이, 이번 임신중절로 이 부부는 또 한 번의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초음파 이상이 발견되고 태아의 유전자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주의 시간 동안 이 부부를 만나 상담을 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마음과 함께 이 산모가 겪었을 아픔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마지막 상담 때 산모님께서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 알았으니 다음 번 임신에서는 언제 어떤 검사를 하면 되는지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임신을 더 하시겠다는 말씀에. 

산전진단 분야에서 일하는 유전상담사들은 이렇게 심각한 케이스들도 많이 보지만, 사실 제일 흔한 케이스들은 산전진단 검사 옵션들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1차/2차 기형아 검사, NIPT, 융모막융모생검(CVS), 양수검사, 보인자 검사 등에 대한 정보를 산모분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어떤 검사를 할지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제일 많이 하게 된다. 워낙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이해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산모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도 되고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를 잘 결정할 수 있도록 여러 사회심리학적인 스킬을 동원에서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또한, 초음파 이상이나 가족력으로 인해 오시는 산모분들에게는 더 세심한 사회심리학적인 스킬들을 이용해서 상담을 하게 된다.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도, 아픈 것을 알지만 낳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모두 한 개인과 가족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존중 받고 선택한 것에 책임질 수 있도록 옆에서 서포트 해드리는 것도 유전상담사의 몫이기에 매일 끊임없이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

김아랑 GeneticsMode 대표는 University of Cincinnati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5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Genetics Center, UCLA Pediatrics Genetics, Sema4 등 다양한 곳에서 산전진단 및 소아 및 성인 유전상담사로 근무했다. UCLA Pediatrics Genetics에서는 NIH 펀딩을 받는 대사질환 연구 코디네이터로도 일 했다. 현재는 미국에 GeneticsMode라는 온라인 유전상담 및 유전상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상담학을 가르치며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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