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처음 유전상담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 했던 고민은, 어떻게 해야 다른 의료진들과 협력하여 더 많은 환자들이 암 유전상담 서비스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였다. 요즘 들어 내가 더 자주 하게 되는 고민은, 환자들이 유전 암 증후군 진단을 받으신 후의 일들에 대한 것이다. 유전  암 증후군을 가진 환자들을 진단하는 것도 환자의 치료와 검진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진단 후 케어는 더더욱 중요하다.

유전상담 클리닉에 따라 유전상담사가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수도 있고, 단발적인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데, 우리 클리닉은 주로 단발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다. 유전 증후군으로 진단을 하게 되면 주로 주치의 (primary care doctor)에게 권고사항들에 대해 고지를 하고 또 필요에 따라 전문의에게 지속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 (미국에서는 앓고 있는 질환이 없더라도 주로 한 사람마다 주치의가 있어서 그 사람이 매년 혈액 검사나, 대장 내시경, 유방조영술 같은 주기적인 검진을 제때 잘 받고 있는지, 또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주치의들은 주로 가정의학과나 내과의 연수를 받은 의사들이다). 

문제는 진단을 한 뒤 환자들이 지속해서 필요한 검진을 주기적으로 받는지 확인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잘 알려져 있는 BRCA1, BRCA2 유전자들에 의한 유전성 난소 유방 종양 증후군 (Hereditary Breast and Ovarian Cancer syndrome)의 경우에는 그나마 검진이 잘 되는 편인데(그마저도 잘 안될 때도 있지만), 더 희귀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증후군이거나 아니면 리프라우메니 증후군(Li Fraumeni syndrome)처럼 매년 수많은 검진이 필요한 증후군의 경우 안타깝게도 케어가 잘되지 않는다. 게다가 리파우메니 증후군 같은 경우에는 환자들이 검진을 받고 싶어도 장비나 기술이 인근 병원에 갖춰져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리프라우메니 증후군 같은 경우에는 TP53라는 ‘유전자의 수호자’라 불리는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있을 때 발병되는 증후군인데, 부신피질 암, 유방암, 뇌종양, 연부조직 육종, 골육종, 백혈병 등 전신의 다양한 장기나 조직들에서 암이 발병될 수 있기 때문에 진단이 되었을 때부터 전신 MRI를 통해 검진을 받는 것이 권고된다. 사실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은 워낙 암 발병률이 높고, 또 그 암이 완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에 진단받은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증후군 중 하나다. 어떤 분들은 심적 부담이 너무 큰 바람에 진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로 인해 검진이  잘 안되기도 한다. 

진단으로 인한 심적 부담감부터가 큰 질환이다보니 병원들이 전신 MRI를 위한 기술이나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해 정기 검진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 좌절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 병원도 전신 MRI를 하기 위한 기술이나 장비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MRI를 어떻게 오더 해야 하는지, 비용 청구는 어떻게 돼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아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에 진단된 환자들을 시스템이 더 잘 구축돼있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들을 줄이기 위해 특화된 유전질환 클리닉이 잘 설립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물론 모든 유전 암 증후군들이 이렇게 세상 복잡한 검진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증후군들 또한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드림으로써 알맞은 검진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유전검사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유전 증후군의 정보가 많아지고 이해도가 높아짐에 따라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환자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그런데 진단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가 그 질환이 어떤 질환인지 잘 이해하고, 진단에 딸려오는 심적 부담감에 잘 대처해 필요한 검진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없다면 그게 환자를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는 마음이 참 무겁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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