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가족 중에 암에 걸리셨던 분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암이었나요? 몇 세에 발병하셨나요? 어떤 치료를 받으셨는지 혹시 기억하세요?"

유전상담을 위해 내원한 환자분께 내가 기본적으로 물어보는 질문들이다. 암 유전 상담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유전적 암 증후군 위험 평가는 개인 병력도 큰 역할을 하지만, 가족력도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가족력 청취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3대에 걸쳐 환자, 환자의 형제, 자매, 사촌들, 부모님과 부모님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조부모님의 병력 조사를 하게 된다. 환자들이 내원해 주기 전에 설문지를 보내드려 간단한 조사를 미리 하긴 하지만, 더 세세한 정보는 유전상담 세션 때 진행하게 되는데, 많은 분들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요?”라며 놀라곤 한다. 당황하는 환자들께 “알고 계시면 상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여쭤봤어요.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제 가족력에 대해서는 제가 하는 질문들에 반도 몰라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넘긴다.

그렇지만 보고된 가족력에 따라서 권고되는 검사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가족력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더 나아가 유전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더라도 가족력만으로도 임상진단이 가능한 질환들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환자가 아프다고 눈앞에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고 한들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주지 않으면 치료를 해줄 수 없는 것처럼 가족력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정확한 위험 평가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실상 가족력에 대해 그렇게까지 세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환자들은 드물다. 친척들과 긴밀하게 지내는 가족이 아니라면, 몇 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친척이 어떤 암에 걸렸는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에는 암에 대한 이야기 같은 안 좋은 이야기들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분들도 많다. 그래서 암에 걸린다 하더라도 쉬쉬하거나 정확하게 얘기를 해주지 않거나 했던 경우들도 있어 답답하다며 하소연하는 환자분들이 더러 계신다.

또 간혹 입양이 되어 생모와 생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NCCN)에서 내놓은 'Genetic/Familial High-Risk Assessment: Breast, Ovarian, and Pancreatic' 가이드라인에는 51세 이하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 중 가족력이 제한적인 경우 유전 검사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권고사항이 쓰여있다. 

이렇듯 가족력에 대한 정보가 잘 공유가 되지 않거나, 가족력을 알 수가 없는 경우들도 어렵지만, 또 하나 조심해야 하는 것은 가족력을 잘못 알고 있을 때다. 예를 들어 여성 암 종류를 헷갈려 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이름도 비슷하고 우리 몸 안에 그 장기들이 위치한 부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헷갈릴만 하지만, 그게 어떤 여성암이었는지에 따라 위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이 생기면 곤란하다.

난소암이었다면 유전적 요인이 있을 확률이 15~20% 정도로 굉장히 커지지만(상피성 난소암일 때), 자궁경부암이라면 유전적 요인이 의심되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병리학 보고서가 있다면 제일 좋지만 부모님이나 자녀가 아니라면 병리학 보고서를 구하긴 쉽지 않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았던 항암치료의 종류를 아는 것이다. 주로 상피성 난소암은 말기 때 진단이 되거나 초기 진단이 되더라도 공격적으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수술도 최대한 남은 암세포가 없도록 자궁과 난소 적출이 포함된 큰 수술을 하게 되고, 화학 치료도 굉장히 강력한 종류로 쓰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렇게 공격적으로 치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진단 후 10년 내로 돌아가시는 환자들이 많다.

그에 반해서 자궁경부암 같은 경우에는 초기 진단이 많은 편이고, 치료법도 비교적 마일드하게 진행되는 편이 많다. 그래서 만약 어떤 환자분이 이모가 40대에 난소암에 걸리셨었는데 수술을 받고 완치되셔서 80세까지 사셨다고 하신다면, 그게 정말 난소암이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꼭 병리학 보고서가 없더라도 다른 정보들을 통해 어떤 암이 진단되었을지 유추해 보고 위험 평가를 돕는 방법도 있긴 하다. 

미국유전상담사협회(National Society of Genetic Counselors)에서는 매년 11월, 12월 즈음 연휴 기간이 다가오면 가족력 알아보기에 대한 홍보를 한다. 심지어는 추수감사절이 'National Family History Day'로 지정되어 있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친척들이 모였을 때 가족력을 공유하라는 거다.

이제 곧 한국은 구정 연휴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기회를 통해 가족력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안부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꺼내기엔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본인뿐만이 아니라 많은 친지들의 질병 위험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알게 될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앞으로 의료의 미래는 예방의학이라고 굳게 믿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암을 포함한 더 많은 질병들이 예방될 수 있길 바라본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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