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유전 질병의 요인이 되는 유전자의 검사가 시작된 초반에는 질병의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있을 때 질병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거나 질병의 위험률이 매우 높은 유전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유전적 암과 관련된 유전자 중에서의 대표적인 예가 BRCA1과 BRCA2이다. 이 유전자들은 고위험군 유전자들로 분류되며, BRCA1이나 BRCA2 유전자에 병적 변이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대중들보다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 여러 종류의 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 많은 유전자들을 동시에 검사할 수 있게 되고, 또 유전자 검사 비용이 낮아지면서 연구소는 물론 임상 클리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를 통해 수많은 유전자들이 암 발병률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임상적으로 검사 가능한 유전자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유방암에 관련된 유전자 검사라고는 BRCA1과 BRCA2 유전자 두 개를 포함한 검사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환자들을 만나 상담 드릴 때 거론하는 유방암에 관련된 제일 큰 검사에는 26개나 되는 유전자가 포함돼 있다. 암 발병률에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들을(아직 연관성이 확정이 되지 않았지만 의심이 되는 유전자까지 포함) 모두 생각해 보면 내가 요새 자주 이용하는 시험소에서 하고 있는 가장 큰 검사의 경우 유전자들이 무려 100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모든 유전자가 높은 암 발병률과 관련이 있을까? 내가 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정답은 “NO”다. 

내가 클리닉에서 유전자 검사를 도와드린 환자들 중 많은 분에게서 'moderate risk gene-중간위험군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발견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중간위험군 유전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 결과에 대한 상담과 검진 권고 사항들이 다른 고위험군 유전자 변이보다 여러 가지 요소들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 말은 환자들이 많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통 이 중간위험군 유전자들은 특정 암에 걸릴 확률이 일반 대중보다 약 2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유방암에 관련된 유전자들 중 ATM 과 CHEK2라는 유전자들이 있는데, 이 유전자들에 병적 변이가 있을 경우 여성 유방암의 발병률이 20~30% 정도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평균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은 12.5% 정도로 알려져 있다). BRCA1이나 BRCA2 병적 변이에서 보이는 60~70% 여성 유방암 발병률에 비하면 훨씬 낮은 확률이다. 숫자로만 보면 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면, 같은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발견되더라도 가족력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CHEK2 병적 변이가 발견되었지만 유방암 가족력이 전혀 없는 여성 환자와 병적 변이와 더불어 유방암 가족력도 강한 여성 환자분의 유방암 발병률은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보고된 가족력에 따라 언제 검진을 시작하게 되는지도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중간위험군 유전자들은 암 환자에서 병적 변이가 발견된다고 해도 대부분 이 병적 변이가 암 발병의 원인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환자분의 다른 친척분들이 같은 병적 변이를 지니고 있지 않다 해도 대중보다는 그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항은 환자들이 중간위험군 유전자에 변이가 발견되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고위험군 유전자에 변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뻐하며 별로 걱정을 안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고위험군 유전자에 변이가 나온 것 만큼이나 충격을 받고 걱정한다. 

그리고 이 중간위험군 유전자들은 발견된 지가 고위험군 유전자들 만큼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정보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가끔 환자들은 이런 초기 정보를 읽고는 현재 권고사항에 맞지 않는 의학 시술을 요구하곤 한다. 

예를 들어 ATM이나 CHEK2 병적 변이는 아직까지의 연구에서는 첫 유방암 발병 후 또다시 새로운 유방암에(원 종양의 재발이 아니라) 걸릴 확률이 대중보다 현저히 높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방적 유방절제술이 권고되지 않는데, 많은 환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방절제술을 원하고 받곤 한다. 개인적으로 좀 걱정스럽다. 물론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는 말을 들으면 두려움을 느끼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방절제술 자체에도 딸려오는 위험도 있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다. 유방암에 걸려 유방절제술을 했는데 그 후 수술 후유증으로 심하게 고생했던 사람들을 더러 보았기 때문에 더 노파심이 생기는 것 같다.

이처럼 중간위험군 유전자들도 수치상 위험도는 낮을지라도 고려해야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가족력을 상세히 조사하고 그에 맞게 개개인의 환자들을 상담해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연구 정보들을 꼼꼼히 리뷰하고 환자들에게 더 정확한 지식을 전해드릴 수 있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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